[류한준기자] "수비를 나가야 하는데요, 땀을 좀 더 흘려야 경기가 잘 되거든요."
넥센 외야수 장기영은 지난 26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 지명타자로 나왔다. 그는 이날 경기 전 훈련을 끝내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면서 위와 같은 진심을 담은 농담을 했다.
장기영은 두산과의 주중 3연전에서 모두 1번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넥센이 빠른 발의 장기영을 지명타자로 돌린 데는 이유가 있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기동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보통 지명타자는 장타력을 갖춘 선수를 내세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넥센은 '발'을 선택했다.
김 감독은 "정수성, 이택근, 서건창 등 빠른 선수들을 모두 기용하기 위해 장기영을 지명타자로 돌렸다"고 말했다. 외야가 꽉 차 장기영을 수비에 내세우지는 못하는 상황이지만 기동력이 좋은 그를 벤치에 둘 수도 없어 지명타자를 맡긴다는 얘기다.
넥센은 두산과 3연전에서 7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특히 27일 경기에서는 도루를 6개나 성공시켜 올 시즌 팀 한 경기 최다 기록을 작성했다. 종전 한 경기 최다 도루는 지난 5월 9일과 24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서 각각 기록한 5개다.
장기영은 "지명타자로 나가는 것도 괜찮다"며 "아무래도 수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에선 도움이 되는 건 있다"고 했다. 그는 "그렇지만 내가 자리를 가릴 위치는 아니다. 어디서든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영은 투수에서 타자로 포지션을 바꾼 이력이 있다. 경남고 시절 참가한 봉황대기에서 우수투수상을 받았던 유망주였다. 현대 유니콘스는 2001년 2차 1순위 전체 9번으로 장기영을 뽑았다.
그러나 투수 장기영에겐 프로 1군의 벽은 높았다. 2003년까지 4경기에 나와 3이닝을 던진 게 전부였다. 군대를 다녀와 다시 팀에 복귀했지만 자리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2008년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현대 시절부터 투수 코치로 장기영을 지켜봤던 김시진 감독이 그에게 타자 전향을 권유했다.
김 감독은 "투수에 미련이 남아 있다면 다른 팀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면서 당시를 기억했다. 장기영은 "감독님께 그 말을 직접 전해듣지는 않았지만 타자로 바꾼 게 내겐 더 잘된 일"이라고 했다.
장기영은 2008, 2009시즌 총 24경기에 나와 29타수 5안타에 그쳤다. 그러나 2010년 주전으로 도약하며 119경기에 나서 435타수 123안타 41도루 타율 2할8푼3리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다소 슬럼프를 겪으면서 타율 2할4푼2리에 머물렀지만 올 시즌엔 다시 2010년과 비슷한 성적을 내고 있다. 28일 현재까지 52경기에 나와 197타수 55안타 타율 2할7푼9리를 기록 중이다. 도루는 정수성과 함께 팀내에서 가장 많은 16개다.
장기영은 "3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라고 했다. '지명타자' 장기영은 두산과 치른 3경기에서 13타수 2안타 1타점 1도루로 부진했다. 그러나 그는 "자리에 부담을 느껴 그런 건 아니다. 출루율에 좀 더 집중하겠다"고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모습이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