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를 떠나 해외리그로 진출한다는 것, 이미 그 선수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해외리그에서 활동하는 한국 축구선수들 대부분이 이미 한국 내에서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이다. 한국에서 정점을 찍은 후 국내 무대가 좁다며 더 큰 무대로 향하는 것이다. 해외파 선수들은 국내파 선수들보다 수준이 한 단계 위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는 이유다.
2010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들 역시 대부분 해외파다.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비롯해 이청용(22, 볼턴), 기성용(21, 셀틱), 박주영(24, AS모나코) 등이 그렇다.
이런 해외파들에 대한 허정무 감독의 신뢰 또한 대단했다. 허 감독은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해외의 유명리그에 진출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해외리그에서 출전 기회를 얻고 좋은 활약을 한다면 금상첨화지만,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해외파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우월성에 가산점을 부여했다.
2009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허정무 감독의 이런 소신은 변함없었다. 허 감독은 당시 조원희, 설기현 등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거의 잡지 못하는 선수들도 해외파라는 이유로 대표팀에 발탁해 이들에 대한 믿음을 이어갔다. 소속팀에서 경기에 자주 나서지 못하는 것은 우려가 되지만 그렇더라도 그 선수가 가진 능력을 깎아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허정무 감독은 "해외리그에서 경기에 못나간다고 해서 그 선수 능력까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맨유같은 팀에서 경기를 못 나가는 것과 국내팀에서 못 나가는 것은 종류가 다르다. 프리미어리그 같은 좋은 리그로 진출했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허 감독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이 우려스럽고 걱정은 되지만 앞으로 경기에 더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대표팀에 와서 해왔던 선수들이라 기대를 하고 있다"며 해외파에 대한 신뢰를 전했다.
하지만 2010년에 들어서자 허정무 감독의 생각에 조금의 변화가 감지됐다.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해외파에 대한 신뢰는 변함없지만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해외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남아공월드컵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해외파가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고 적응할 수 있게 기다려줄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2010년 새해가 시작됐고 월드컵이 점점 다가오자, 그런 여유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리그에 상관없이 경기에 출전해 좋은 모습을 보인 선수들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해외파라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면 자연스레 허정무 감독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27일 파주NFC에서 만난 허정무 감독은 "해외리그에 있다고 해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그 선수의 경기를 지켜볼 방법이 없다. 그 선수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경험이 많고 현지 노하우가 있는 선수들이 그런 경험을 가지고 K리그로 돌아와 경기를 하면 오히려 판단하기 쉽다"고 밝혔다.
이제부터는 국가대표팀에 발탁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기 출전 여부와 활약상이다. 소속리그의 이름값은 앞으로 태극마크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해외파라고 마냥 우러러보기만 하는 시기가 지난 것이다.
허정무 감독은 "K리그를 꾸준히 관전하며 지속적으로 관찰해 본선에 갈 수 있는 경쟁력을 살펴볼 것"이라며 해외에서 출전하지 못하는 것보다 K리그에서의 출전과 활약상이 본선 멤버에 포함되는데 더 유리할 것이라 시사했다.
최근 설기현과 조원희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생활을 접고 K리그로 복귀했다. 이들이 K리그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월드컵 출전을 위해서였다. 설기현과 조원희는 허정무 감독의 '달라진' 시선을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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