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오만 쇼크', '베이루트 참사' 등 과거 한국 축구는 약팀에 발목을 잡혀 충격에 빠졌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 3차 예선에서도 레바논 원정에서 패하며 '평화 유지군' 역할을 하고 왔다는 누리꾼들의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한국 대표팀은 약팀을 상대로 한 징크스는 거의 없앴다. 오히려 확실하게 강팀의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말대로 약팀을 만나면 그라운드에서 화려한 경기력을 펼쳤다.
올해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오만, 쿠웨이트 등 중동의 껄끄러운 팀들을 상대로 무실점 승리를 거뒀다. 2018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을 시작한 뒤에는 레바논, 쿠웨이트, 라오스, 미얀마 원정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는 소득을 얻었다.
랭킹 숫자상으로는 슈틸리케가 만난 팀들은 쉬운 상대처럼 보였다. 2차 예선 한 조인 쿠웨이트(133위), 레바논(140위), 미얀마(161위), 라오스(176위) 등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8위인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다. 평가전 상대였던 뉴질랜드(159위), 우즈베키스탄(71위), 자메이카(61위)도 한국보다는 순위가 떨어진다. 하지만 높은 랭킹이 결코 경기에서의 우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원정경기의 경우 상대 팀들의 환경 자체는 열악하다. 특히 중동 원정은 더위와 시차로 인해 애를 먹는 데다 홈관중의 광적인 열기까지 더해 힘들게 치르는 경우가 많다. 동남아 원정 역시 고온다습한 기후에 그라운드 상태까지 좋지 않아 이변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다양한 변수가 있는 상황에서도 슈틸리케 감독은 확실한 결정력과 끈끈한 수비라는 두 가지 무기로 이변의 가능성을 말 그대로 가능성으로만 남겨 버렸다. 아시아 축구의 상향 평준화로 이웃 일본이 싱가포르에 0-0으로 비기고 캄보디아 원정에서도 상대 자책골로 운이 따르는 승리를 거두는 등 애를 먹었다.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대표팀의 월드컵 예선 행보는 더욱 돋보인다.
밀집 수비, 역습으로 무장한 약체팀들에게 랭킹은 그저 객관적인 지표에 불과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들을 상대로 한 2차 예선에서 6전 전승에 23득점 무실점이라는 뿌듯한 결과를 냈다. 치열한 내부 주전 경쟁으로 전력을 상승시킨 결과물인 셈이다.
수비적인 팀들의 수비를 깨는 방법을 경기를 치르면서 쌓아가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최종 예선으로 향하게 되면 상대 팀들의 밀집 수비는 더 촘촘하고 빨라진다. 한국은 빠른 공간 패스로 이를 허무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개성이 팀에서 극대화되는 것이다.
선수들은 승리의 과정을 통해 여유를 갖고 도전적으로 경기하면 충분히 밀집 수비를 깰 수 있다는 심리적인 무장을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점유율 축구를 기본으로 한다. 경기를 주도하면서 상대를 확실하게 무너뜨려 한국을 쉽게 볼 수 없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브라질월드컵 이후 자신감이 떨어진 한국 축구에 분명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남은 것은 더 강한 상대와의 경기를 통한 슈틸리케호의 경쟁력과 객관성을 찾는 일이다. 대표팀은 내년 3월 2차 예선 7, 8차전을 치르고 나면 6월에 A매치 기회가 생긴다. 슈틸리케 감독은 서서히 팀들 만들어 내년 6월에 강팀을 상대로 평가전을 치르겠다는 의지로 가득하다. 대한축구협회의 행정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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