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단기전 경험이 많은 '학범슨' 김학범 감독의 승부수는 '물고 늘어지기'였다. 구체적으로 벽세우기와 지연이었다. 그것은 그대로 통(通)했다.
성남FC가 2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FA컵 결승전에서 FC서울에 120분 동안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 -2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성남은 26일 K리그 클래식 37라운드 순연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승점 34점으로 챌린지 플레이오프 최종 승자와 승강 PO를 치르는 11위에 머물러 있다. 강등 탈출권인 10위 경남FC(36점)와는 2점 차이다.
FA컵에 힘을 빼면 이날 경기에 지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30일에는 잔류를 확정한 부산 아이파크와 38라운드 최종전이 있다. 일주일 동안 3경기를 치러야 한다. 강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두 경기에 힘을 써야한다. FA컵 결승전이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남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선수들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는 것 뿐이다. 서울 원정시에는 당일 성남에서 출발했다. 이전 일화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 전 호텔 숙박으로 전의를 다졌다.
이번에는 잠시 일화로 돌아갔다. 22일 경기장 인근 상암동의 한 호텔에 숙박하며 선수들에게 우승에 대한 동기부여를 심어줬다. 준우승에 그치면 아쉽지만 정규리그 두 경기를 앞두고 긴장감을 올리기에는 효과적이었다.
김 감독은 우승을 위해 정공법과 함께 수비벽을 두껍게 세우는 전략을 택했다. 2006 K리그 당시 수원 삼성과 챔피언결정전에서 지능적인 수비로 2승을 거두며 우승을 했던 기억이 있다.
성남이 4강에 오른 상황에서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상대의 전력에 따라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4강에서는 전북 현대를 상대로 빡빡한 수비를 앞세워 부담스러운 승부차기까지 몰고갔다. 공격형 미드필더에 수비형인 정선호를 배치해 전방에서부터 수비로 압박하며 득점을 저지했다. 전북이 승부차기에 안좋았던 기억을 잘 알고 있었고 최대한 실점하지 않은 뒤 11m 룰렛에서 5-4로 웃었다.
서울전에서도 김 감독은 패싱 플레이가 능한 세르베르 제파로프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세운 것을 제외하면 최대한 안정적으로 경기 운영을 했다. 쉽게 전진 패스를 시도하지 않는 대신 발빠른 김태환, 김동희 등 윙어들에게 측면 역습을 맡겼다. 서울의 플랫3 뒷공간이 취약하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수비와 미드필드의 간격은 5m 이내로 촘촘했다. 한 골이면 승부가 갈리는 단기전에서는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위험한 상황이면 아웃시키며 빠르게 정비했다. 공격시에는 제파로프에게 모든 조율을 맡겼다. 최대한 성남이 가진 전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전반 22분 서울 에스쿠데로가 빈 골문을 향해 슈팅하는 것을 곽해성이 머리로 막아낸 것은 이날 성남 수비의 끈끈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틈을 안주는 수비로 물고 늘어지는 의도는 성공했고 0-0으로 정규시간 90분을 끝내며 4강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연장전으로 몰고갔다. 공식은 전북전과 유사했다. 공격은 앞선 4명으로 하고 나머지는 수비에 치중했다. 승부차기 시점이 다가오자 선방 능력이 좋은 전상욱을 마지막 카드로 내보내기 위해 연습을 시켰다.
하지만, 볼이 아웃되지 않으면서 전상욱 교체 카드는 날아갔다. 승부차기에서 박준혁 골키퍼를 믿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구상의 일부가 틀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침착했던 김 감독은 선수들을 믿었고 결과는 우승으로 돌아왔다.
'여우'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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