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넥센 히어로즈가 17일 김시진 감독을 전격 경질한 건 여러모로 의외의 조치다. 물론 구단의 김 감독에 대한 신뢰도에 이상이 생겼다는 건 최근 들어 감지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선수단을 화끈하게 휘어잡지 못한다며 김 감독의 카리스마 부족을 탓하는 목소리가 구단 내부에서부터 제기돼왔다.
▲그럼에도 이번 조치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우선 경질 시기다. 넥센은 지난 시즌 중반 김 감독과 3년 재계약했다. 다년 계약을 맺은 감독을 계약 기간 첫 해가 지나기도 전에 해임하는 건 무척 드문 현상이다. 최소한 1시즌 반 내지 2시즌은 지켜보고 결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넥센은 잔여 계약 기간에 아랑곳않고 전격적으로 경질 사실을 공개했다. 그만큼 구단, 정확히 말하면 구단 상층부의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넥센은 지난 겨울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돈 없는 가난한 구단'이란 세간의 인식을 씻겠다는 듯 거물급 선수들을 줄줄이 영입했다. LG에서 FA 시장에 나온 이택근을 4년 총액 50억원이란 거액에 재영입해 큰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메이저리그 출신 김병현을 총액 16억원에 끌어들여 야구판을 발칵 뒤집어놨다. 이장석 구단주는 당시 "현실적인 이유로 자식같은 선수들을 타 구단으로 보내야 했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며 "이제 우리 팬들에게 그간 못했던 보답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만큼 올 시즌에 대한 구단의 기대가 남달랐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야구계에선 이번 시즌 넥센의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개막 이후 초반 승승장구하면서 상위권에 터를 잡자 '꿈이 실현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올스타 휴식기 이후 넥센은 급격히 페이스를 잃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김병현이 고국 무대 적응에 애를 먹으며 적신호가 켜졌다. 김병현은 선발에서 불펜 투수로 보직이 바뀌었고, 한때 2군으로 강등되는 수모도 겪었다. 김병현의 투구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김 감독의 조치였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올 시즌 김병현은 1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13으로 크게 부진했다. 투수 평가의 척도인 WHIP가 1.66에 달했다.
김병현뿐이 아니었다. 한때 홈런왕을 넘볼 것 같았던 강정호는 후반기 들어 급격히 페이스가 처졌다. 7월 이후 1홈런에 그치는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이택근 역시 이런저런 부상에 시달리며 94경기 출장에 그쳤다. 타율 2할7푼5리 8홈런 55타점으로 몸값에 비해 활약이 크게 떨어진다.
외국인 선발 투수 나이트와 밴 헤켄이 분전하면서 마운드의 높이를 끌어올렸지만 이들로는 역부족이었다. 9월 들어 플레이오프 희망이 사실상 물거품이 되면서 구단은 감독 교체만이 해답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 전반기 선전에서 알 수 있듯 가진 자원은 해볼 만하지만 이들을 한 데 엮어 전력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다시 말해 '할 수 있는 걸 못한 건 감독 책임'이라는 기본 인식에서 전격적인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잔여 계약 기간은 큰 고려사항이 아니었던 셈이다. 시즌 초반 높아졌던 기대가 불안과 실망의 시간을 거치면서 '결단'에 이르게 됐고, 결단을 주저하게 하는 요소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구단의 이번 조치는 무수한 뒷말을 낳을 전망이다.
▲김 감독은 지난 1993년 태평양 돌핀스(넥센, 현대의 전신)의 투수 코치로 히어로즈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2007년 현대의 감독으로 승격된 뒤 2007년 시즌 후 현대의 팀 해체 및 히어로즈 인수 창단 과정에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2009년 시즌을 앞두고 그는 넥센의 2대 감독으로 다시 수장의 지위에 올랐다. 이렇게 무려 19년간 이어온 김 감독과 넥센의 인연이 갑작스럽게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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