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메이저리그는 미국의 '국민적 여가'로 불린다. 말 그대로 야구는 즐길 거리다. 경기 시작도 주심의 공을 갖고 놀자는 의미의 "플레이 볼"선언으로 시작된다.
그에 비해 일본 프로야구는 종교처럼 엄숙하다. 때로는 전쟁처럼 비장함이 감돈다. 메이저리그에서의 '아웃' 이라는 표현을 죽을 '사'자로 풀어 쓰고 팀을 군대라는 의미의 '군'으로 표현하는 것에서도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
같은 룰의 야구를 하지만 야구를 대하는 마음 가짐은 그만큼 다르다. 마음가짐이 다른 만큼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도 크게 다를 수 밖에 없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나라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왼손 거포의 동반 부진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명은 이승엽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데이비드 오티스다.

아시아 최고의 거포로 불리며 올해 요미우리 자이언츠 4번타자로 출발한 이승엽은 14일 현재 홈런 한 개 없이 52타수 7안타, 타율 1할3푼5리에 타점 2개를 기록하고 2군으로 내려갔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클러치 히터로 불리며 보스턴 레드삭스 중심타자로 활약하는 오티스는 14일 현재 12경기에서 43타수 3안타, 타율이 고작 7푼에 그치고 있고 홈런 1개와 타점 3개만을 기록 중이다.
요미우리와 보스턴이라는 명문 구단의 중심타자로 같은 왼손 타자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지난 겨울 심각하면 심각하고 사소하다면 사소한 수술을 받았다는 점도 같다. 이승엽은 왼손 엄지 인대재건 수술을 받았고 오티스는 무릎 수술을 받았다.
나이는 76년 생인 이승엽이 75년 생인 오티스보다 한 살 적다. 하지만 야구선수로서는 절정에 오를 나이로 아직은 쇠퇴를 논하기에 이르다는 점도 같다면 같은 점이다. 둘 모두 수술은 부진의 이유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부진'이라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두 선수이지만 처방법은 너무도 다르다.
요미우리는 이승엽이 부진하자 4번타자로 나서던 이승엽의 타순을 5번으로 조정하더니 그래도 부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11일 6번으로 내린 뒤 13일 2군행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요미우리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초반 부진한 이승엽에 대해 "다시 일어설 때까지 시간 제한이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시노즈카 가즈노리 타격 코치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이승엽을 압박했다.
결국 이승엽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2군행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반면 보스턴은 오티스를 끝까지 자기 타순인 3번 타자로 기용하는 등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 14일 뉴욕 양키스전에서 결장하긴 했지만 문책성이라기보다는 순수한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준 것 뿐이다.
보스턴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뛰어난 타자인 그는 누구보다 많은 책임감과 심리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브 매가단 타격코치는 "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단지 예전과 달리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볼을 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진단했다. 앞으로 공을 고르는데 신경쓰면 곧 해결될 문제라는 진단이다.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선수의 부진에 대해 늘 관대하고 기다리는 것만은 아니다. 특타라는 과외 훈련도 시키고 마이너리그에 내려보낼 수 없을 경우 작은 통증을 빌미삼아 부상자 명단에 올린 뒤 마이너리그 재활 경기에 내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시즌 개막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더구나 팀의 운명을 쥔 중심 타자를 장기간 경기에서 빼는 일은 메이저리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다.
두 부진한 거포에 대한 문제 해결 방식이 두 나라 프로야구의 우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최근 메이저리그의 일본 프로야구에 대한 시각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뛰어난 일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대거 활약하게 됨에 따라 일본 프로야구의 강도높은 훈련 방식과 선수 조련법에도 눈길을 돌리는 전문가들도 나오고 있다.
와신상담도 하나의 방법이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만 같은 병에 전혀 다른 두 처방을 받아든 이승엽과 오티스, 둘 가운데 어떤 선수가 먼저 회복할 지를 놓고 고개를 드는 호기심만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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