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여기서 부르고 저기서 부르니 더 바빠요."
'난 놈'에서 '백수'가 된 신태용(47) 전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은 요즘 재미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기자와 만난 지난 19일에도 오전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빼곡하게 있었다.
자택 근처에서 피곤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일요일(18일)에는 신태용 축구교실을 챙겼다. 오전, 오후로 행사가 이어져서 모두 지켜봤다. 자연스럽게 잠도 늦게 자게 됐다. 백수인데 더 피곤하다. 내일(20일)도 일이 있고 계속 있다. 지인들 만나고 쉬는데 좋은 것 아니냐"며 웃었다.
◆"유소년부터 성적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니…"
기대했던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은 16강에서 끝났다. 8강 진출을 외쳤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지난해 12월 지휘봉을 잡고 6개월 만에 팀을 만든다는 것은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그나마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 감독이었기에 기니, 아르헨티나를 꺾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16강 진출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U-20 월드컵을 되돌아보는 일은 시일이 많이 지나 의미가 없어졌다. '조이뉴스24'도 다수의 전문가와 일선 지도자들을 상대로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보도했다. 그렇지만, 깊은 반성과 복기는 많이 해도 나쁘지 않다. 신 감독은 "이미 여러 매체에 많은 이야기를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솔직히 인터뷰 약속도 취소하려고 했다. 같은 이야기를 또 할 것 아닌가"라고 털어놓았다.
문제점 진단과 대안 도출 등은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쏟아냈다. 그래서 U-20 대표팀이 아닌 한국 축구 전체를 통상적으로 간단하게 들여다봤다. 신 감독은 딱 두 가지만 말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투자 없는 축구는 욕심'과 '사고의 전환'이다.
"한국은 유소년부터 성적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학원 축구 지도자들을 예로 들어보자. 당장 성적을 내지 못하면 무능한 지도자로 꼽힌다. 성적을 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일주일 내내 연습 경기만 하면 된다. 똑같은 경기만 하면 몸에 익혀지니 어느 정도는 된다. 이러면 선수들의 자가발전이 되겠는가. 물론 일선 지도자들은 내 말에 '배부른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가 할 방법이 있는데 똑같은 것만 가르친다. 그러니 선수가 성장하겠는가."
뿌리부터 변하지 않으면 한국 축구의 정체는 더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신 감독의 진단이다. 그는 유소년 전문 지도자는 아니지만 '신태용 축구교실'을 통해 유소년 선수들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어린 선수들은 어떻게 키울 것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특정 연령대에서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습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개성이 없는 선수들만 양성되고 있다. (기자-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선수라는 것인가?) 맞다. 팀이라는 틀 안에 계속 선수를 맞추려고 한다. 요즘 선수들이 어떤 선수들인가. 자유롭게 축구를 배우고 있지 않나. 나이를 먹으면서 특징 있는 선수가 되도록 기술 지도 등 세밀한 양성이 필요하다."
◆"이승모 기대되고 백승호도…전원 성장 기대"
U-20 월드컵에 나선 21명의 선수는 그나마 해외 유스나 K리그 유스를 통해 성장한 자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어느 정도는 체계 있는 축구를 배우며 커왔고 신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신 감독은 2월 포르투갈 전지훈련에서 돌아온 뒤 대학 대회를 찾아가는 등 선수 발굴에 힘을 기울였고 팀을 구성했다.
기대와 달리 현실은 냉정하다. 팀으로 복귀한 7명의 K리거는 18명의 출전 명단에 드는 것 자체가 힘들다. 이상헌(울산 현대), 임민혁 윤종규(이상 FC서울)는 2군이고 한찬희(전남 드래곤즈)만 교체 출전과 선발을 오가고 있다. 이유현(전남 드래곤즈)은 21일 상주 상무전에 교체 출전을 했다. 이승모(포항 스틸러스)는 17일 울산 현대전을 통해 프로에 데뷔했고 21일 인천전에는 교체 명단에 있었다. 우찬양(포항 스틸러스)은 멘탈 회복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이승우(FC바르셀로나 후베닐A)와 백승호(FC바르셀로나 B)에게는 "이름값에서 조금 떨어져도 더 나은 팀에서 기회를 얻고 경기를 뛰라"는 조언을 한 바 있다. 대학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이승모(포항 스틸러스)는 참 재능이 있는 친구다. 포항에서 어떻게 활용을 할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는 정말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많이 뛰면서 경기 체력을 키우고 감각을 만든다면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장한다고 본다. (백)승호는 정말 내게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완벽하게 100%로 만들 수 있었다. 자신이 있었다. 정말 재능이 있더라. 미래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기회를 얻어서 더 컸으면 좋겠다. 일단 선수라면 뛰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성장할지 정말 궁금하다."
잠시 쉬고 있는 신 감독이지만 타의에 의해 공석인 A대표팀 감독 후보군에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신 감독과 함께 허정무(62)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최용수(44) 전 장쑤 쑤닝(중국) 감독 등과 '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2경기만 치를 것인지, 본선까지 책임지거나 그다음인 2022 카타르월드컵까지 책임을 부여할 것인지, 상황이 많이 복잡하다. 그렇지만, 계산을 모르는, 화통한 신 감독은 생각 자체가 간단하다.
◆"A대표팀 감독? 물 흐르듯이 살고파"
"그냥 물 흐르듯이 살고 싶다. (기자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이냐고 묻자 신 감독은 '맞네'라며 웃었다. 한자성어 요산요수(樂山樂水)처럼 자연과 어울려 편하게 산다는 것과 맞물린다.) 모든 것은 대한축구협회에서 결정하지 않나. 다들 '대표팀 감독이 된다면'이라는 '가정'을 하고 내게 묻더라. 가정이 말이 되는가. (A대표팀이든 23세 이하 대표팀이든) 책임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그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하면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충분히 역할을 해내리라 본다. 아직 아무 제안도 받은 바 없고 아무 생각도 없다. 내가 스스로 하겠다고 한 적도 없지 않은가. 나는 그렇다. 상황을 주면 그것에 맞게 가는 것이다. 내게 역할을 맡긴다는 보장도 없는데 무슨 답이 필요하겠는가."
A대표팀의 위기는 한국 축구의 위기와 맞닿아 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된다는 생각은 그 누구도 해보지 않았다. A대표팀을 통해 한국 축구의 틀을 잡고 발전 계획을 수립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그만큼 8월 31일 이란(홈), 9월 5일 우즈베키스탄(원정) 2연전을 절박하게 뛰어야 한다. '축구인'의 입장인 신 감독은 A대표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월드컵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 가야 한국 축구도 힘을 유지한다. 분명한 사실은 A대표팀은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이다. 이란이나 일본, 호주 등과 견줘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정신만 바짝 차리고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면 충분히 이기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신 감독은 운명에 어떤 직함이 또 들어갈지, 흥미진진한 여름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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