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두산이 하루 쉬어가는구먼."
5일 잠실경기를 앞두고 '야구밥'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온 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두산 베어스는 주전 상당수를 제외하며 1.5군 위주의 라인업을 짰다. 주포 민병헌(우익수)을 비롯해 오재일(1루수), 김재호(유격수)가 빠졌다.
발목 부상으로 지난 3일 1군 명단에서 제외된 양의지(포수)까지 주전의 절반 가까이가 제외됐다. 무엇보다 선발투수의 비중에서 상대팀 SK 와이번스에 크게 밀렸다. 두산이 '임시 선발'로 2군에서 급히 불러올린 우완 안규영을 내세운 반면 SK의 선발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중 하나인 김광현이다.
두산으로선 '이기면 좋지만 져도 아쉬울 것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야구는 속단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경기도 그랬다. 안규영이 인생 최고의 피칭을 펼치며 '거함' 김광현에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이날 안규영은 6이닝 동안 7안타를 산발시키며 SK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공 86개를 던지며 삼진 2개를 잡은 반면 볼넷은 하나도 없었다. 두산이 7-0로 이기면서 안규영은 프로 첫 승의 감격을 맛봤다.
휘문고-경희대 출신으로 2011년 드래프트 4라운드로 두산에 입단한 그는 데뷔시즌인 2011년 9월24일 광주 KIA전에서 6.1이닝 5실점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퀄리티스타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무랄 데 없는 투구였다. 3회를 제외한 매 이닝 안타를 허용했만 특별한 위기는 없었다. 1회말 2사 뒤 최정에게 좌전안타를 내준 후 곧바로 정의윤을 우익수 뜬공 처리했다. 선두 이재원을 우전안타로 내보낸 2회에는 박재상을 삼진, 이재원을 도루사로 처리했다. 박정권은 2루수 땅볼로 잡았다.
최정용에게 좌전안타를 맞아 맞이한 4회 1사1루에선 정의윤을 투수 땅볼로 유도해 병살타를 완성했다. 이재원에게 좌전안타, 김성현을 중견수 옆 2루타로 내보내 몰린 5회 2사 2,3루에선 이명기를 2루수 땅볼로 침착하게 잡았다.
안규영의 호투가 이어지는 동안 두산은 착실히 점수를 쌓았다. 1회말 에반스의 중전 적시타와 폭투로 2점을 선취한 뒤 2회 허경민의 적시타로 추가점을 올렸다. 3회에는 박건우가 좌월 솔로홈런으로 안규영의 어깨를 더욱 가볍게 해줬다.
4-0으로 앞선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안규영은 첫 타자 고메즈를 중전안타로 내보냈지만 이번에도 후속 두 타자를 착실히 잡아냈다. 고메즈의 도루 시도는 포수 박세혁이 정확한 송구로 잡아냈다. 안규영은 7회부터 불펜에 마운드를 넘겼다. 2번째 투수 진야곱이 경기를 무사히 매조지면서 이날을 안규영 자신의 날로 만들 수 있었다.
호투의 비결은 도망가지 않고 맞더라도 자기 공을 던지겠다는 적극성이었다. 마치 칠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줄기차게 덤벼드는 그에게 SK 타자들은 '어 어' 하며 말려들다가 어이없이 당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경기 전 "몇 점이나 줄지는 모르겠지만 투구 내용과 관계 없이 기본 투구수는 채우게 할 것"이라고 했다. 어차피 임시 선발로 내세우는 만큼 최대한 이닝을 맡기면서 불펜의 부하를 줄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운드에 선 안규영은 내용과 이닝 모두 더 바랄 게 없는 최상의 결과로 응답했다. 이틀 전 고원준(5이닝 1실점 승)의 호투에 이어 안규영까지, '땜빵 선발' 둘을 내고도 주말 시리즈를 싹쓸이 한 두산이다. 되는 집안은 뭘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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