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마지막 선물은 하고 가야 할 텐데 말입니다."
별다를 것 없었던 똑같은 경기였다. 그러나 고별전이라는 타이틀 앞에서는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감성적이라 눈물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라며 말을 아꼈다.
29일 포항 스틸야드, FC서울과의 K리그 38라운드를 앞둔 경기장 전광판에는 '황새'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의 현역 시절과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고 우승을 차지했던 추억들이 하나씩 지나갔다. 2011년 포항 지휘봉을 잡고 정규리그, FA컵 우승을 동시에 해낸 2013년의 극적인 장면이 지나갔다.
선수대기실 입구에서 커피를 들고 물끄러미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황 감독은 "마지막이지만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라며 입을 열었다.
하필 정규리그 최종전 상대는 늘 황 감독을 넘겠다며 라이벌 의식을 표출하던 최용수 감독의 FC서울이다. 최 감독과 상대전적은 8승8무6패(승부차기 무승부 포함)로 살짝 앞서 있었다.
경기 전날까지 선수들, 구단 직원들 및 포항시 주요 인사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정리를 했다는 황 감독은 "부상자가 많아서 걱정이다. 승리해서 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 선물을 하고 가야 될텐데 말이다"라며 마지막까지 치열한 고민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날 포항은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같은 시간 열리는 수원 삼성-전북 현대전에서 수원이 이기면 포항은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로 밀린다. 2위까지 주어지는 직행 티켓이 사라진다. 황 감독은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황 감독은 "부산 아이파크에서도 그렇고 포항도 마찬가지다. 늘 어려웠지만 배움은 있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우승하는 법을 알았다는 것이다"라며 얻고 가는 것이 있음을 전했다.
2002 한일월드컵을 함께 했던 '독수리' 최용수 감독에게 장문의 문자를 받았었다는 황 감독은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닌데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하지 않느냐. 우리에게 이기겠다는 최 감독의 말도 맞다. 승부의 세계 아닌가"라며 웃었다.
최 감독도 마찬가지, 그는 "황 감독은 좋은 지도자상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나는 많이 배웠지만, 흉내도 내지 못하는 지도자다. 나와는 스타일 자체가 다르다"라며 찬사를 잊지 않았다.
챔피언스리그나 FA컵 등 토너먼트 16강, 8강 등 고비마다 만나 강한 면모를 보여줬던 최 감독은 "황 감독이 이번 90분 경기를 마지막으로 포항과 이별하지만 나와 이별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일이다. 나는 (황 감독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겠다"라며 필승을 다짐했다.
선수 입장 후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반가움과 격려가 교차했다. 서로 손을 맞잡고 꽉 안아주며 마지막을 함께 했다. 경기도 그들 스타일대로 나왔다. 치열한 점유율 싸움을 벌이며 양보하지 않았다.
전반 16분 최재수의 선제골이 터진 뒤 손준호를 제외한 10명은 모두 벤치 앞으로 달려와 큰절을 올렸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자 세리머니였다. 손준호는 중앙선을 넘어오면 곧바로 서울이 경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서울 진영에서 지켜봤다.
최 감독은 애써 이 장면을 외면했다. 후반 35분 몰리나가 1-1을 만드는 동점골이 터졌지만 다른 경기와 달리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골이 터지면 정장이 찢어질 정도로 큰 동작으로 기뻐했던 최 감독도 그저 박수로 좋아했을 뿐이다.
치열했던 두 감독의 마지막 싸움은 포항의 2-1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라운드에서는 황 감독이 잠시 물러나지만 다음 달 1일에는 학생으로 만난다. 파주 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파주 NFC)에서 열리는 P급 지도자 강습회에 나란히 참석해 수학한다. 공부하는 지도자 대결은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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