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이대호(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오승환(한신 타이거즈)의 2014시즌은 함께 '맑음'이었다. 일본시리즈에서 둘이 만났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말이었다.
이대호는 소프트뱅크 4번 타자로 전 경기에 출전하면서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롯데 자이언츠,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한신 마무리투수 오승환은 일본 진출 첫 해부터 39세이브를 올리면서 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뒷문이 허전했던 한신의 허점을 완벽하게 메우면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자리 잡았다.
이대호, 첫 우승을 경험하다
이대호의 2014시즌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2012년 입단해 2년 동안 뛰었던 오릭스를 떠나 소프트뱅크로 이적,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다. 아키야마 고지 소프트뱅크 감독은 시작부터 이대호를 4번 타자로 낙점하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소프트뱅크는 이대호가 이적하기 전까지 확실한 4번 타자가 없어 고민이 컸다. 마쓰다 노부히로, 우치카와 세이치 등이 4번을 맡았지만 만족스러운 성적을 낸 선수가 없었다.
이대호는 일본 진출 후 2년간 오릭스에서 285경기에 모두 4번 타자로 나서 타율 2할9푼4리 48홈런 182타점으로 맹활약했다. 그리고 올해도 144경기에 모두 4번 타자로 출전해 타율 3할 19홈런 68타점을 올리면서 제 몫을 해냈다.
타선의 중심이 잡히자 팀 성적도 상승했다. 소프트뱅크는 78승 6무 60패를 기록, 3년 만에 리그 정상에 올랐다. 이대호는 2001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소속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소프트뱅크로 이적하면서 "우승할 수 있는 팀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던 이대호의 꿈이 드디어 이뤄졌다.
소프트뱅크는 일본시리즈에서 한신을 만나 1차전 패배 후 2차전부터 내리 4연승을 거두면서 4승 1패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대호는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팀의 승리를 이끄는 홈런을 때리면서 4번 타자의 자존심을 세웠다. 일본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한국 선수는 이대호와 이승엽 (2005년·2009년), 이병규(2007년), 김태균(2010년) 등 4명이다.
팀 우승의 값진 경험을 했지만 개인 성적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대호는 시즌 후 귀국하면서 "4번 타자로서 성적이 좋지 않아 힘든 한 해였다"고 털어놨다. 앞서 2년 연속 24홈런을 때렸던 이대호는 올해 19홈런에 그쳤다. 여기에 팀 동료 우치카와가 "4번을 치고 싶다"면서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대호의 다음 시즌 전망은 여전히 밝다. 소프트뱅크는 2015년을 앞두고 야후오크돔의 외야 펜스 높이를 낮추고, 홈베이스에서 좌·우중간 거리도 줄일 예정이다. "야후돔만 아니었다면 홈런 20개를 넘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대호의 아쉬움도 덜 수 있을 전망이다.
소프트뱅크는 스토브리그서 마운드 보강에 힘을 쏟았다.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FA 신분이 된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붙잡았고, 올해 삼성에서 평균자책점(3.18), 탈삼진(180) 타이틀 2관왕에 오른 밴덴헐크를 영입했다. 이대호는 "마쓰자카에게 타자를 상대하는 법 등을 배우고 싶다"면서 새 동료들과 함께 맞을 다음 시즌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소프트뱅크는 2015년부터 구도 기미야스 감독 체제로 새롭게 출발한다. 이대호의 일본 무대 네 번째 시즌에 걸린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한신에 불어닥친 '오승환 열풍'
승승장구다. 한국 최고 마무리 투수였던 오승환이 일본 프로야구까지 평정했다. 오승환은 올해 일본으로 진출하자마자 64경기에 나서 2승 4패 5홀드 39세이브 평균자책점 1.76을 기록하면서 센트럴리그 세이브왕을 차지했다. 시즌 초반 적응기를 짧게 마친 뒤 오승환의 공은 거침없이 뻗어 나갔다. 전반기에 22세이브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했던 오승환은 후반기 들어 17세이브를 더했다. 평균자책점은 1점대로 낮아졌다.
오승환은 한신 마무리투수의 새 역사를 썼다. 오승환은 지난 8월 12일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시즌 28세이브를 거뒀다. 이는 1998년 벤 리베라가 기록한 27세이브를 넘어 한신의 외국인 투수 최다 세이브로 기록됐다.
9월 24일 요코하마전에서는 36세이브를 거두면서 일본 프로야구 역대 외국인 첫 시즌 최다 세이브를 기록했다. 2000년 게일러드(주니치), 2011년 사파테(소프트뱅크)가 기록한 35세이브를 넘어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이다.
오승환의 기록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오승환은 시즌 최종전에서 39세이브를 거두면서 선동열 KIA 감독이 1997년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세운 역대 한국인 최다 세이브(38세이브)까지 넘어섰다.
한신은 오승환의 활약을 앞세워 2005년 이후 9년 만에 일본시리즈에 진출했다. 오승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성적이다. 오승환은 정규시즌 마지막 5경기부터 포스트시즌까지 12경기 연속 등판하는 괴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클라이맥스시리즈 6경기에서는 8.1이닝 동안 2실점하면서 4세이브 평균자책점 2.16을 기록해 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그러나 1985년 이후 29년 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노렸던 한신은 이대호의 소프트뱅크에 무릎을 꿇었다. 오승환의 아쉬움도 묻어있다. 오승환은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 2-2로 맞선 연장 10회말 1사 1, 2루 위기 상황에서 구원 등판해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한신은 이후 5차전까지 패해 1승 4패로 우승을 내줬다. 오승환은 귀국 후 끝내기 홈런을 맞았던 순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아픈 장면으로 꼽았다.
오승환을 향한 한신의 믿음은 여전하다. 오승환이 내녀 시즌 후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고 싶다는 발언에 한신 관계자가 직접 한국으로 찾아와 다음 시즌 계약을 맺기도 했다. 나카무라 가쓰히로 한신 단장은 "나는 (오승환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면서 2년 계약이 끝난 뒤에도 오승환의 팀 잔류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시즌 후 한국에서 짧은 휴식을 취한 오승환은 괌으로 이동해 본격적으로 2015시즌 준비에 나선다. 0점대 평균자책점이 다음 시즌 그의 목표다.
오승환의 괌 개인훈련 캠프에는 한신 젊은 투수들이 합류한다. 가네다 가즈유키, 이와모토 아키라 등 신인급 선수들이 오승환과 함께 훈련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마쓰다 료마는 "오승환의 훈련을 보고 공부해서 나만의 습관을 만들겠다. 오승환 선배의 연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1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 후배 투수들에게 롤모델이 된 오승환의 팀 내 입지를 말해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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