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19일 문학구장. SK 와이번스와의 원정경기를 앞둔 송일수 두산 감독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자신의 지론인 '번트를 활용한 작은 야구'가 일부 비판에 직면하자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아요"라며 말문을 연 그는 "상황에 따라서는 번트도 아주 중요하고 유효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번트에 대한 논란은 결과론일 뿐"이라며 "성공했으면 달라졌겠지만 결과가 실패로 나타나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주포인 홍성흔에게도 번트 지시를 한 적이 있다"는 그는 "상대 투수가 김광현(SK) 같은 에이스라면 번트는 매우 효과적인 득점수단"이라며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번트를 댈 생각이다. "고 덧붙였다.
초반 잦은 번트 시도는 두산의 올 시즌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다. 지난 겨울 취임 일성으로 "번트 등 작은 야구를 통한 세밀한 전술 야구가 나의 야구관"이라고 밝힌 그는 어떤 경기이든 1점이라도 초반에 앞서야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평소 강조한다.
경기 전 덕아웃을 후끈 달군 화두였지만 정작 경기의 흐름을 가른 건 번트가 아닌 대포 2방이었다. 그것도 전혀 예상 못한 하위 타선의 두 타자가 결정적 홈런으로 두산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승리를 안겼다. 우선 김재호. 지난해 1홈런, 올 시즌에는 '무홈런'에 시달려온 그는 1-1 동점이던 5회초 좌월 솔로포로 두산에 귀중한 리드를 안겼다.
선두타자로 나선 그는 호투하던 SK 선발 밴와트를 상대로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 141㎞ 가운데 직구를 잡아당겨 좌측 담장을 살짝 넘겼다. 지난해 9월22일 잠실 KIA전 3점홈런을 친 뒤 11개월만에 터진 홈런포였다.
2번째 홈런은 더욱 극적이었다. 두산이 5회말 2-4로 역전당한 뒤 맞이한 6회초 공격. 김현수, 홍성흔의 안타와 양의지의 볼넷으로 2사 만루 천금같은 찬스를 잡았다. 이날 시즌 첫 홈런을 친 김재호는 흔들리던 밴와트의 공을 침착하게 기다려 6구째만에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냈다. 3루주자 김현수가 홈을 밟아 3-4.
다음 차례는 좌타석의 9번 정수빈. 평소 센스는 있지만 파괴력 있는 타격과는 다소 거리가 있던 그는 밴와트의 2구째 가운데 높은 직구를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쳤다. 방망이 중심에 정통으로 맞은 공은 우측 담장을 훌쩍 넘어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만루홈런.
정수빈의 시즌 5호 홈런이자 개인 첫 그랜드슬램이었다. 이 홈런으로 단숨에 승부의 흐름을 되돌린 두산은 SK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짜릿한 3연승 행진을 이었다.
경기 전 송 감독은 "번트는 아무 때나 해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 번트를 대야 할 상황이 있다면 피하지 않고 작전을 구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두산은 이날 승부처에서 논란이 될 만한 번트를 시도하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순간 기대하지 않았던 두 타자가 결정적인 홈런포를 터뜨린 덕에 쉽지 않은 경기를 승리로 가져갈 수 있었다.
번트 논란의 정답은 없다. 다만 송 감독의 말대로 이기면 나오지 않을 비판이 결과가 좋지 않다보니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유야 어쨌든 두산의 번트 논란을 일시적이나마 잠재운 홈런포 2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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