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창간 9주년을 맞은 조이뉴스24가 특별 인터뷰 대상자로 LG 이병규를 선정한 것에는 아무런 고민도 필요치 않았다. 이병규는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LG를 11년만에 가을잔치 무대에 올려 놓았다. 등번호 '9번' 이병규를 창간 '9년' 조이뉴스24가 만나봤다.
◆감동의 정규시즌 최종전, 정정당당 '타격왕'
10월5일 두산과의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LG는 3위에 올라 있었다. 5일 두산전에서 승리하고, 같은날 넥센이 '최하위' 한화에 패해야만 플레이오프에 직행할 수 있는 상황. LG가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기적적인 드라마가 연출됐다. LG가 두산을 5-2로 꺾는 사이 넥센이 한화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9회초 두산의 마지막 타자 정수빈의 타구가 우익수의 글러브에 빨려드는 순간 LG 선수들은 한꺼번에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눈물바다를 이루며 기쁨을 만끽했다. 박용택, 이동현은 아예 '엉엉' 울었다.
그러나 캡틴 이병규는 울지 않았다. 이병규는 "사실 나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 순간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게 올라오더라"며 "그런데 아직 울 순간이 아니라고 생각해 애써 참았다"고 말했다. 우승의 순간을 위해 눈물을 아껴뒀던 것이다.
이병규의 타격왕도 이날 경기에서 확정됐다. 4타수 무안타에 그치지 않는 한 이병규가 손아섭(롯데)을 제치고 타격왕에 오를 수 있는 상황. 이병규는 첫 번째, 두 번째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난 뒤 세 번째 타석에서 승부를 뒤집는 2타점 2루타를 터뜨렸다. 이날 경기의 결승타였다.
정정당당히 타격왕을 차지한 이병규다. 만약 세 번째 타석까지 범타에 그칠 경우 더 이상 타석에 들어서지 않으면 타격왕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병규는 깨끗한 안타, 그것도 승리와 함께 2위로 이끄는 안타를 터뜨리며 생애 두 번째 타격왕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만약 세 번째 타석까지 안타를 못쳤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 나는 나갔을 것이다. 사실 코치님들이 배려를 해주셨다. 안나가도 된다고. 그런 마음도 이해가 된다. 평생 한 번 받을까 말까 하는 타이틀이니까. 그런데 만약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치자. 타격왕 하겠다고 대타로 교체된다고? 말이 안되는 소리다."
LG의 2위가 확정된 뒤 경기가 끝났음에도 LG 팬들은 관중석을 떠나지 않았다. 응원단과 함께 선수들의 응원곡을 우렁차게 노래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용의, 오지환은 그라운드로 나와 춤을 추며 관중들과 기쁨을 함께했다.
이병규도 팬들의 연호에 그라운드에 나섰다. 자신의 응원곡에 맞춰 응원 동작을 따라한 뒤 인사를 하고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병규는 한 가지를 잊어버렸다고 했다.
"사실 내가 실수했다. 선수들을 전부 이끌고 나가 단체로 팬들에게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기쁨에 경황이 없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구상하고 있던 것들도 있었다. 말을 타고 입장해서, 손을 흔들며 팬들에게 인사하는 것이다. 그것도 늙은 말로.(웃음) 우승한 뒤에는 꼭 하려고 했는데…"
◆아쉬운 11년만의 가을야구, 4경기 만에 막 내리다
우승 후로 미뤄놨던 이병규의 세리머니는 결국 등장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LG의 가을야구가 불과 4경기 만에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두산과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을 내준 LG는 2차전을 잡아냈지만 3,4차전을 내리 패하며 1승3패로 허무하게 11년만의 가을잔치를 마감했다.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LG 선수들은 울었다. 이번엔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아쉬움과 분한 마음이 뒤섞여 있는 눈물이었다. 이병규도 마지막 경기 패배 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채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너무 이기려는 마음이 크다보니 아무래도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평범한 타구에서 실책도 나오고. 큰 경기에서는 수비가 정말 중요하다. 한국시리즈에서도 계속 실책이 승패를 좌우하고 있지 않나. 정규시즌에서는 오늘 실수를 내일 만회할 수 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만회가 어렵다. 그래서 경험도 무시할 수가 없다."
아쉬움 속에 가을잔치가 막을 내렸지만 이병규는 희망을 말했다. LG는 이번 시즌 정말 잘 했다는 것이다. 이번 경험이 미래를 위한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병규의 생각이다.
"내가 잘 못했던 것이 아쉽다. 안타를 하나씩 쳐서 될 것이 아닌데. (이병규는 플레이오프 4경기에서 17타수5안타 타율 2할9푼4리를 기록했다) 그래도 올 시즌 경험한 것이 앞으로는 굉장히 큰 힘이 될 것이다. 10년을 못하다가 해본 것 아닌가. '아, 이런 거구나. 이런 분위기구나'라고 느껴본 것이 내년에 잘할 수 있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이병규가 달라졌다? 칭찬모드와 개인주의
이병규가 달라졌다는 평가도 올 시즌 들어 부쩍 많아졌다. 개인주의적인 선수에서 팀을 생각하는 선수로 변화했다는 것. 분명 달라진 점은 있었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 이병규는 동의하지 않았다.
"후배들의 마인드를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다. '또 안되나, 이래서 안되나' 이런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칭찬모드'로 바꿔봤다. 노골적으로 칭찬하기보다 은근히 '잘한다, 잘한다' 했던 것이 팀을 활기차게 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안된다고 화를 내고 싫은 소리를 하기보다 칭찬을 통해 팀 분위기를 즐겁게 바꾼 것이다. 이병규가 시즌 내내 강조했던 '즐기는 야구'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시작된 새로운 분위기 속에 LG의 어린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훈련을 했다는 것이 이병규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병규는 스스로가 개인주의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선수들을 통솔하는 방법을 바꿨을 뿐, 자신의 성격을 바꾼 것은 아니라는 것. 사실 이병규에 대한 편견은 팀 성적이 나쁜 와중에 개인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생겨난 측면이 있다. 이병규는 개인주의가 뭐냐고 되물었다.
"개인 성적이 좋아서? 그럼 선발 투수가 열심히 해서 20승을 올리면 그건 개인주의인가. 희생을 안하는 선수가 어디 있나. 그러나 희생 이전에 누군가 안타를 치고 나가야 할 것 아닌가. 진루를 시켰으면 누군가는 불러들여야 할 것 아닌가. 희생을 위해서는 희생을 위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희생번트를 댔으면 불러들일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희생만 있어서는 안된다. 개인이 잘해야 한다. 그게 팀 플레이다."
이병규가 주장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본 진출 전인 2004년 주장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병규 위로 선배들이 많았다. 유지현, 서용빈 코치도 아직 현역 생활을 할 때였다. 당시에는 선수단을 두루 살피고 싶어도 그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제서야 팀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서야 주장으로서 팀을 다독일 수 있는 여건이 이병규에게 주어진 것이다.
◆캡틴의 존재감…성적이 좋아서? "선배는 선배다"
올 시즌 이병규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주장으로서의 영도 선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그 말에 이병규는 인터뷰 중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성적과 관계 없이 선배는 그냥 선배라는 것이다.
"야구를 잘하건 못하건 선배는 그냥 선배다. 야구 못하면 선배가 아닌가? 나는 그게 제일 나쁜 생각이라고 본다. 선배지만 '내가 내세울 게 없으니까'라며 움츠러드는 선수도 있지만, 그것도 좋지 않다. 야구는 누가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있지만 체계란 것이 있지 않나.
후배가 톱클래스고 선배가 조금 못한다 해도 선배는 선배다. 야구 잘한다고 집에서 아버지를 무시하지는 않지 않나. 선배가 아버지는 아니지만 야구장에서는 윗사람 아닌가. 류현진이 아무리 야구를 잘해도 나 보면 인사한다. 내가 잘해서? 아니다. 선배라서 하는 거다."
<③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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