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류현진은 빅게임 투수인가?"
10월19일(한국시간) ESPN의 다저스 담당기자 마크 색슨은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NLCS) 7차전 등판이 예정된 류현진이 중압감 심한 상황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기사의 제목이었다.
◆'성공 그 이상'이었던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
메이저리그 루키가 팀의 한 해 농사를 좌우할 큰 경기에 나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저스는 올 시즌 운명을 류현진의 왼팔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다저스는 류현진이 등판하기 전인 6차전에서 졌다. 그렇지만 색슨 기자의 질문은 류현진의 올 시즌이 어땠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저스가 2승4패로 리그 챔피언전에서 탈락한 탓에 류현진이 '빅게임'에서 자신을 증명할 기회도 사라졌다. 그렇다 해도 3차전에서 보여준 류현진의 7이닝 무실점 역투는 스스로 가치를 입증한 돋보이는 증거로 남았다.
14승8패 평균자책점 3.00. 너무도 눈부신 성적을 남기고 류현진은 데뷔 시즌을 마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출신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그의 올 시즌은 '성공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무척 부족하다. 류현진은 수많은 명투수를 배출한 한국 야구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났다. 진부하지만 항상 따라붙는 그의 별명처럼 류현진은 '괴물'이었다.
◆투혼의 3천70구
류현진의 가치는 숫자에서 잘 드러난다. 올 시즌 그는 다승 내셔널리그 공동 10위, 평균자책점 공동 8위, 퀄리티스타트(QS, 22개) 공동 8위에 QS비율(73%) 15위에 올랐다. WHIP(1.20)에선 20위에 랭크됐다. 투수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에서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올 시즌 그가 던진 공은 모두 3천70개. 783명의 타자를 맞아 타석당 3.92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리그 6위에 해당한다.
맞기도 많이 맞았다. 182개의 안타를 허용했고, 그 중 2루타 30개, 3루타 2개, 홈런 15개 등 장타도 많았다. 볼넷은 49개를 내줬고, 몸에 맞는 공은 딱 1개만을 허용했다. 그 사이 삼진도 154개를 잡아내며 '닥터 K'로서의 능력이 빅리그에서도 통함을 과시했다. 병살타는 무려 26개를 유도해내며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모두를 추종자로 만들다"
류현진의 질주에 미국 언론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검증이 되지 않았다"며 삐딱했던 스프링캠프 당시 반응은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서부지역 최대 일간지 LA타임스는 지난 9월25일(한국시간) "류현진이 모두를 추종자로 만들다"는 장문의 기사를 싣고 올 시즌 그의 활약이 기대 이상이었음을 인정했다.
이 신문은 "다저스가 류현진을 끌어들일 때 그의 기량 때문이 아닌 LA 지역의 한인 팬들을 의식한 계약이라는 시각이 한때 있었다"며 "하지만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완벽하게 입증한 류현진을 보고 지금은 구단 관계자, 팬은 물론 류현진과의 계약을 강력히 촉구했던 사람들조차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썼다. 모두에게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류현진의 2013 시즌이었다.
◆"류현진은 아티스트"
그의 영입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다저스 구단 또한 당연히 만족해 한다. 네드 콜레티 다저스 단장은 시즌을 마친 뒤 "최선을 다해 팀을 승리로 이끌며 기대만큼 활약했다"고 극찬했다. 그는 ""류현진은 우리가 바라던 재능을 지닌 선수"라며 "올 시즌 많은 경기에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며 굉장한 활약을 펼쳤다"고 부연했다.
돈 매팅리 감독의 평가는 더욱 극적이다. "스프링캠프 당시 기대 이상으로 잘 해줬다"고 한 그는 "내가 몇 번 표현했듯 류현진은 '예술가(Artist)'에 가까운 선수"라며 "구위나 제구 등 기량 면에서나 승부욕 등에서 흠잡을 곳이 없다"고 극찬했다. 매팅리 감독은 "너무 긴장했던 한 경기(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치른 디비전시리즈)를 뺀 모든 경기에서 늘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구단 수뇌부의 돈독한 신뢰를 얻은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득이다. 단 한 시즌, 30차례의 선발 등판을 통해 류현진은 주위의 모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놓았다.
◆더 창창해진 앞날
꿈같은 데뷔시즌을 보낸 류현진의 앞날은 더욱 창창하다. 자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준 덕에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에 이어 다저스의 3선발로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그의 제구력은 정교했고, 포심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조합은 여전히 빛났다.
NLCS에서 패퇴해 25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다저스는 다음 시즌을 더욱 벼르고 있다. 선발진의 '빅3'를 앞세워 한 번 더 정상에 도전할 계획이다. '빅리그 신인' 딱지를 떼게 된 류현진에게도 한결 거센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류현진은 "99점을 주고 싶다"고 자신의 데뷔 시즌을 자평했다. '백넘버 99번' 류현진이 다음 시즌에는 몇 점을 받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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