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축구에서 골키퍼는 특수한 포지션으로 인식된다. 한 번 주전을 확보하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수비라인과의 호흡이 골키퍼를 쉽게 교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최후방에서 전체 라인을 컨트롤하는 골카퍼의 외침과 움직임에 선수들이 체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한국 축구대표팀의 10년을 살펴봐도 그렇다. 2002 한일월드컵, 2006 독일월드컵 모두 이운재(은퇴)가 부동의 주전이었다. 그에게는 김병지(전남 드래곤즈)라는 필생의 라이벌이 있었고 김용대(FC서울) 등 후배들의 도전도 만만치 않았다.
경쟁자들을 이겨낸 이운재는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정성룡(28, 수원 삼성)에게 자연스럽게 주전 장갑을 넘겼다. 정성룡은 화려함은 없지만 안정감 있는 방어로 한국의 원정 월드컵 첫 16강을 이끌었다.
이후 정성룡은 2011 아시안컵을 통해 더 성장했고 2012 런던올림픽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는 등 대표팀 간판 수문장의 이미지를 쌓았다. 그와 경쟁해온 김영광(울산 현대), 이범영(부산 아이파크) 등이 있었지만 모두 역부족이었다.
부동의 주전 뒤에는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확실한 라이벌의 부재는 기량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 정성룡은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과정에서도 제1의 골키퍼였다. 누구도 그를 넘지 못했다.
물론 정성룡도 단점은 있다. 판단력과 반응 속도가 늦어 실점을 하는 일이 꽤 있다. 안정감은 있지만 소위 '슈퍼세이브'라고 불리는 화려한 선방이 많지 않은 것이 그렇다.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새로운 경쟁자는 등장하게 마련이다.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의 본격적인 브라질월드컵 체제를 선언하면서 선발한 김승규(23, 울산 현대)가 정성룡의 아성을 흔들 존재로 급부상했다.
김승규는 지난 14일 페루와 친선경기에 전격 선발 골키퍼로 나섰다. 페루가 강한 공격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두 차례 슈퍼 세이브를 보여주며 존재감을 뽐냈다. 철밥통으로 불린 골키퍼 포지션의 경쟁 체제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청소년대표팀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김승규는 2008년 울산에서 프로에 입문했지만 늘 김영광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올 시즌 김영광의 부상으로 기회를 얻었고 21경기에서 20실점을 하며 경기당 평균 0.95실점을 했다. 덕분에 울산은 리그 2~3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반면 정성룡은 22경기에서 25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당 평균 1.13실점이다.
대표팀은 다음달 아이티(6일), 크로아티아(10일)와 두 차례 A매치를 치른다. 27일 발표된 홍명보호 3기 명단에서는 정성룡, 김승규의 선발과 함께 김진현(26, 세레소 오사카)의 재승선도 눈에 띈다. 그는 올 시즌 22경기서 21골을 내줬다. 경기당 평균 0..95실점이다. 세레소는 J리그 5위를 기록 중이다. 김진현은 조광래, 최강희호에서도 꾸준히 대표 선발됐지만 경기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경쟁의 대열에 합류했다. 홍 감독은 김진현의 예를 들며 "김진현은 예전에 대표팀에 들어왔던 선수고 개인적으로 작년에 많이 지켜봤다. 안정적인 선수다. 골키퍼는 특수한 포지션인데 누가 좋은 경기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는 경쟁이 필요하다. 이미 경쟁은 시작됐다"라며 이들을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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