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강원FC 김상호(48) 감독에게 오래간만의 여유가 찾아왔다. 9일 잠시 제주도 전지훈련지를 빠져나와 상경했던 그는 둘째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노트북을 선물하며 모처럼 아빠 노릇을 했다. 매년 이 맘때는 해외전지훈련에 나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빵점 아빠였는데 이번에는 일정이 묘하게 맞아 딸 졸업식을 함께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 웃음을 잃었다. 최순호 감독의 전격 사임으로 지휘봉을 물려받은 뒤 연패 탈출을 막지 못했고 감독 부임 첫 해 꼴찌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공부하는 지도자인 그에게 꼴찌는 충격이었다.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강원을 이끌었지만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이론과 노력도 난파선 안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심기일전한 김 감독은 올 시즌 강원의 파란을 예고했다. 조짐은 지난달 중국 쿤밍 1차 전지훈련에서 보였다. 1천8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체력 훈련에 집중했고 선수들의 몸 상태도 좋아졌다. 중국 프로팀과의 연습경기에서는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제주도 서귀포로 옮겨 2차 전지훈련을 시작해서는 강원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대학팀에 패하는 등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선수들의 기가 꺾이거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은 아니었다.
김 감독도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작은 일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소신 때문이다. 훈련지에서 만난 그는 "대학팀에 패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강원이 하고자 하는 플레이를 점점 해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단순한 연습경기 결과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역설했다.
주변에서 강원이 올 시즌 큰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이는 데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김 감독은 "우리가 무슨 문제인가. 상대들이 우리에 대한 견제를 강하게 하는 모양인데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웃었다.
전임 최순호 감독 때부터 이어왔던 강원의 '이상축구'는 계속된다. 특히 높은 볼점유율을 기반으로 공격의 세밀함을 끌어올리는 것이 초점이다. 김 감독은 "조화로운 플레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기의 재미를 안겨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라며 강원만의 색깔을 확실히 구축해 올 시즌 8위 이내의 성적을 내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제주 훈련에는 쿤밍 전훈을 통해 가린 1군 선수들이 참가했다. 이들의 생존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영리한 코칭스태프들과 매일 미팅을 하며 개선점을 찾고 있다.
제주 유나이티드와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각각 영입한 김은중(33), 배효성(30)은 천군만마와 같다. 주장 김은중은 공격진, 부주장 배효성이 수비진을 리드하며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고 있다.
김 감독은 "두 사람이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끌고 간다. 이들에 대한 신뢰감이 상당하다. 후배들을 다독거리면서 뭔가 하려는 것이 너무 보기 좋다"라고 평가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함께 뛰는 수평적 리더십이 올 시즌 강원의 부활을 이끄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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