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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감독은 '우승 노이로제'를 이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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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범기자] 강하게 느껴졌던 불안감이 현실이 됐다. 김경문 두산 감독이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프로야구 경기가 없던 지난 13일 월요일, 야구계는 김 감독의 전격 사퇴 소식에 떠들썩했다.

두산 구단은 13일 오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김경문 감독의 사퇴 소식을 전했다. 홍보팀은 보도자료를 발표하기전 전 이례적으로 "중요보도자료 릴리즈 예정"이라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취재진들에게 이를 알렸다. 무슨 일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결국 감독 자진 사퇴의 근본적 원인은 '우승 노이로제'다. 김경문 감독은 2004년 두산 사령탑 부임 이후 단 한 차례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올해를 제외하고 7시즌 동안 승률 5할 아래로는 내려가본 적이 없고, 6차례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명장이지만, 프로팀의 최종 지향점인 우승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늘 가을만 되면 김경문 감독은 막판 상기된 얼굴로 패장으로서의 인터뷰만 전했고,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하겠다"는 것이 반복된 코멘트였다.

김경문 감독은 평소 우승에 대해 상당히 뜨거운 열정을 드러냈다. 정작 시즌이 시작되면 냉정함을 되찾고 우승과 관련된 얘기는 입밖에 꺼내지 않았지만 비시즌에는 종종 "우승을 해야 한다"고 솔직하게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전승으로 금메달 쾌거를 이룬 후다. 당시 베이징 현지 코리아하우스를 찾은 김 감독은 "내 인생에 우승이라는 것은 없는 줄 알았다. 눈물이 날 뻔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두산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지 5년째였고, 이 때 역시 우승에 대한 열망은 뜨거웠던 상황이었다.

이후 2008, 2009, 2010 시즌까지 3년 동안 두산은 계속해서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됐다. 2008 시즌에는 한국시리즈에서 또 다시 SK에게 무너졌고, 2009 시즌에는 플레이오프서 악연 SK에게 덜미를 잡혔다. 지난해에는 혈전 끝에 플레이오프서 삼성에게 분루를 삼켰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감격 이후 김경문 감독은 줄곧 두산 유니폼을 입고서는 '불완전연소'만 반복했던 셈이다.

올해 김경문 감독의 각오는 남달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번에는 우승을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지만 올해는 말을 아꼈다. 전지훈련 때 김 감독은 "말로만 해서는 의미가 없더라. 결과로 보여주겠다"고 했고, 실제로 개막 전 실시한 미디어데이서도 "결과로 보여주겠다"고 짧게 언급했다. 8개 구단 감독 중 김경문 감독의 시즌 출사표가 가장 짧았다.

하지만 이 배경에는 두산의 사령탑으로서 올해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던 영향이 크다. 계약 마지막 해인 2011년 우승을 일궈내지 못한다면, 본인 스스로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진하게 풍겼다. 개막 전 취재진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김 감독은 "즐겁게 먹자,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사실 올해는 두산 구단 측에서도 김 감독을 전폭 지원했다. 거물급 용병 더스틴 니퍼트를 영입했고, 일본 진출 후 국내복귀를 타진한 이혜천도 섭섭하지 않게 데려왔다. 라몬 라미레즈와 대체용병 페르난도 니에베가 기대에 못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결과론일 뿐 구단 역시 우승갈증에 허덕이면서 팔을 걷어올리고 전력 보강을 적극 도왔다.

그런 만큼 김경문 감독의 부담감이 상당했을 터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시키려고 했던 안정된 선발진이 무너졌고, 불미스런 일로 생긴 임태훈의 공백과 이로 인한 계투진의 부하와 부진이 이어졌다. 중심타선의 부진과 주전의 줄부상에 이상하리만큼 꼬이는 투타 엇박자와 실책까지 겹치면서 두산은 5월 들어 추락했다. 2004년 부임 이후 가장 매섭게 우승을 다짐했던 김 감독으로서는 시즌초 부진에 얼마나 허탈했을까.

명감독이지만, 우승복이 없었던 그는 결국 자진사퇴라는 용단을 내렸다. 이미 5월 초부터 이를 얘기해온 터라 프런트 역시 이번에는 김 감독의 결단을 만류할 수 없었다. 김경문 감독은 조만간 미국으로 떠나 한 동안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프로 감독은 우승이 최종 목표다. 김경문 감독의 선택은 프로 감독들의 고독한 숙명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일례로 남을 듯하다.

조이뉴스24 권기범기자 polestar17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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