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프로야구단 창단을 논의하고 있는 KT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예상보다 큰 암초를 만났다. 서울 연고구단 두산과 LG가 28일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KT의 새 구단 창단 준비와 서울 입성에 제동을 걸었다.
엄밀히 말하면 야구단 창단 의사를 밝힌 KT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고 서둘러 일을 진행한 KBO가 비난의 표적이다. 그러나 KT가 60억 원이라는 '헐값'에 현대의 권리를 모두 가져가는 부분도 타 구단들의 반발을 샀다.
KBO는 이에 대해 "8개 구단으로 내년 시즌을 꾸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농협, STX와의 협상이 연이어 무산된 상황에서 당장 야구단 인수 의사를 갖고 있는 기업을 찾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로써 한국 프로야구의 씁쓸한 현실은 만천하에 드러났고 야구계는 찬반 양론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60억 원'이라는 씁쓸한 단어가 논란의 핵심이다.
◆8개 구단 체제 유지가 우선…"어쩔 수 없는 선택"
신상우 총재는 27일 새 구단 창단 추진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거듭 "8개 구단으로 시즌을 치러야 한다는 원칙을 전제로 일을 추진했다"고 강조했다. 현대의 뒤를 잇기로 한 KT가 프로야구 '가입금' 형식으로 KBO 발전기금 60억 원만을 내놓기로 한 데 대한 변명과도 같았다.
현대는 1996년 태평양을 인수할 때 430억 원을 썼다. 2000년 쌍방울 해체후 창단했던 SK도 총 250억 원을 지불했다. 게다가 올해 FA를 선언한 김동주는 원 소속구단 두산에서 62억 원(4년)을 보장 받았다. 아무리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라지만 "구단 하나의 가치가 선수 한 명의 몸값보다 못하다"는 한탄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게다가 KT는 KBO가 2007 시즌 현대 운영비로 담보 대출했던 130억 원의 빚과 서울 입성 자금 54억 원 중 어느 쪽도 부담하지 않기로 했다.
KBO는 KT로부터 긍정적인 의사를 이끌어내기 위해 현대를 '거저 넘기는' 방법 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신 총재는 "KT와 협상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됐던 건 바로 현대의 부채 문제였다. KT 쪽에서 현대 이름으로 출자된 돈까지 부담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고 그 쪽 변호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면서 "나 역시 현대가 많은 혜택을 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8개 구단으로 운영하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KBO는 실제로 몇몇 대기업에 먼저 접촉을 시도했지만 쉽사리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1년에 100억원을 웃도는 운영비를 매해 부담하고 싶어할 기업은 많지 않다. 또 프로야구 각 구단은 매해 수십억 원 대의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TV 중계권료조차 KBO 수입으로 귀속되는 상황에서 마땅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해서다. 그러니 "현대의 공중분해를 막기 위해서는 농협이나 STX 때와 마찬가지로 KBO가 철저히 약자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프로야구선수협회와 일구회·백구회 등 중견 야구인들의 모임이 일단 KT에 환영의 뜻을 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8개 구단으로 내년 시즌을 치를 수 있게 돼 안도하는 분위기다. KBO 역시 KT와 공동으로 창단 계획을 발표하면서 "연내에 현대 문제를 꼭 해결하겠다"는 공언을 절반은 지키게 됐다. 아직 '해결'은 아니지만 일단 한 고비는 넘겼다는 걸 알렸다.
◆KT, 현대 부채 해결 없이 권리만 가져간다?
그러나 여전히 숙제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60억 원이라는 가입금은 사실상 '무혈 입성'을 의미한다. KT는 현대의 권리를 가져가되 의무는 버리는 쪽을 택했다. 서울 연고와 안산 돔구장 우선 사용권은 모두 확보하고 부채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나머지 7개 구단이 쉽게 KT의 가입을 찬성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서울에 연고를 둔 두산과 LG는 '이유있는 반대'를 하고 나섰다. 현대는 서울 입성을 위해 SK에게 받았던 54억 원을 운영 자금으로 써버렸다. 때문에 두산과 LG는 각각 나눠받아야 할 27억 원을 손에 넣지 못했다. 그런데도 당장 내년부터 KT와 서울을 나눠써야 할 판이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KT가 현대의 채무를 일절 부담하지 않는다면 연고지 문제 역시 다시 논의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신상우 총재가 각 구단에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하고 무리하게 일을 추진한 점도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두산과 LG는 공동 성명서에서 "KBO 이사회는 '8개 구단으로 가자'는 원칙에 합의한 게 전부다. KT의 서울 입성, 그리고 현대 운영자금으로 대출한 금액을 KBO 기금으로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 적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두산을 비롯한 대부분의 구단주 대행에게 양해를 구했다는 신 총재의 주장과는 다르다.
또한 아무리 구단 매각이 어렵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사회 의결 없이 성급하게 발표부터 해버린 것은 일의 순서가 틀렸다는 지적이다. 각 구단은 현대 해체와 창단을 추진하는 KT에도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바라고 있다. 아무리 '8개 구단'이라는 명분이 중요하더라도 최소한의 '실리'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게 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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