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유하감독은 '비열한 거리'(제작 싸이더스FNH)에 대해 조폭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조직폭력배를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조직폭력을 미화하거나 조직폭력배의 삶을 멋있게 그린 영화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조직폭력배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어두운 일들에 대해 사실적으로 담은 이 영화의 화면과 전개를 두고 조폭 영화가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조직폭력의 세계를 미화하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도 역시 조인성이라는 순수한 눈을 가진 배우로 인해 일정 부분 미화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극중 황 회장(천호진 분)의 말처럼 조인성의 얼굴은 조직폭력배 답지 않다. 그는 조직폭력배의 세계에 발을 담근 청년의 비열함과 악랄함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

조인성은 주인공 병두 역을 맡아 그가 가진 연기력의 최대치를 뽑아낸 듯 보이지만 극의 리얼리티를 표현하는 데 있어 다른 배우들에게 밀리는 양상이었다. 몸을 사리지 않은 그의 액션장면은 분명 볼거리였다. 허나 감독이 의도했던 '비열한 거리'의 희생양이 되어 폭력의 악순환과 비루한 인간들의 삶을 표현하기에는 눈빛의 다양한 변주가 이뤄지지 않았다.
유하 감독은 조직폭력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기 위해 직접 조폭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모습을 이용해 영화를 만들려는 자신의 모습이 그네들의 삶보다 더 비열하고 비굴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유하 감독의 이런 모습은 병두를 배신하는 영화감독 친구 민호(남궁민 분)을 통해 형상화돼 있다.
'비열한 거리'가 평가받아야 할 지점은 그 부분이다. 여타 조직폭력배를 다룬 영화와 다르게 '비열한 거리'에는 이 시대의 지식인층에 대한 자기폭로가 드러나 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조폭 세계의 비정함보다 병두를 배신하는 민호의 야비함과 이기심에 더욱 '비열한 세상'을 느낄 듯 하다. 유하 감독은 그 부분을 지적하며 '비열한 거리'가 단순한 조폭영화가 아님을 강조했다.
유하 감독은 병두라는 젊은 건달의 짧은 삶을 통해 서사에 대한 욕심을 펼친 듯 하다. 감독은 2시간 20분 가량의 요즘 한국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상영시간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그 와중에 중점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뒷골목 조직폭력배들의 일상적인 삶과 사시미를 휘두르는 패싸움의 모습이다.

18세 등급을 양보하지 않겠다던 유하 감독의 욕심대로 조폭들의 싸움 장면은 매우 섬뜩하다. 허벅지와 발목을 쑤시고 찌르는 칼의 효과음이 귀에 거슬릴 정도로 폭력에 대한 표현 강도가 매우 세다.
마지막으로 이창동 감독의 97년작 '초록물고기'를 기억하는 관객들이라면 '비열한 거리'를 보며 막둥이(한석규 분)의 짧은 청춘과 병두의 청춘이 종종 오버랩 될 것이다. 결국 막둥이나 병두 또한 누군가를 죽이고 그 대가로 신분상승을 꿈꿨지만 그 살인으로 인해 자신 역시 온전한 죽음을 맞지 못한다. 그런 막둥이나 병두의 모습은 현실의 뒷골목에서 못다 핀 청춘들의 비가(悲歌)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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