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지영 기자] 영화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 '인어공주', '이끼', '은교' 등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색을 보여준 배우 박해일의 새 얼굴이 관객의 오감을 사로잡는다. 이전보다 더 짙어지고 깊어진 감성으로 영화 '헤어질 결심'을 이야기한다.
지난달 개봉해 최근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헤어질 결심'은 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
어른의 성숙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 '헤어질 결심'은 그간의 박찬욱 감독이 표현해 왔던 직접적인 고백, 노골적인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작품 속 해준과 서래는 수사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이끌리고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마음이 엇갈린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마음으로 주고 받는 농밀한 긴장감은 관객을 더욱 여운에 빠트린다.
박해일은 극에서 그리는 어른들의 사랑, '사랑한다'라는 고백하지 못하고 숨기고 삭혀야 하는 사랑에 대해 "어른이어야만 이런 방식의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배우가 아닐 땐 직접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에둘러 감정을 숨기기도 하고 알아차릴 정도로 던질 때도 있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헤어질 결심'이 범죄 수사 중 피어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박해일은 "멜로와 수사라는 장르 안에 박찬욱 감독님의 화학작용을 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박해일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박찬욱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사석에서 대화를 나눈 적은 있지만, 함께 작업을 하게 되면서 기대감이 컸다고. 그는 "저라는 배우가 감독님한테 어떤 방식으로 쓰일지 제일 기대가 됐다"라며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원하는 결과물을 만족시켜드릴 수 있을지, 결과물을 위해 신나게 즐기면서 촬영할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했다"라고 회상했다.
박찬욱 감독은 정서경 작가와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 이야기를 먼저 구성한 뒤 그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배우를 먼저 캐스팅하고 그 배우와 어울리는 캐릭터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가장 먼저 캐스팅 시도한 배우가 탕웨이, 그다음이 박해일이었다.
이에 박해일은 "배우의 성질을 감독님이 많이 흡수해주시고 감독의 세계에 활용해주셨던 부분이 큰 것 같다"라며 "저는 이번 작업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제 연기를 많이 지지해주셔서 여러 방식으로 해볼 수 있었다"라고 감사함을 표했다.
그러면서 박찬욱 감독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이를 연기한 것에 "예전의 영화들은 관객에게 직접 다가가 감정의 스크래치를 내는 방식이라면, 이번에는 조용하게 몰래 다가와 어떤 감정으로 무슨 얘길 하고 눈빛을 봐야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오는 방식으로 연출을 하신 것 같다. 이건 제 예상과 크게 달랐다"라고 느낀 점을 말했다.
극 중 중국인인 서래와 한국 형사인 해준. 문어체에 가까운, 사극에서 배운 어색한 한국어로 말을 구사하는 서래, 그의 한국어 이해 실력에 맞춰 조심스럽게 다가가 진술받아내던 해준은 서로 본인의 마음을 알아채기도 전에 빠져버린다. 이들은 많은 대화 대신 주고받는 눈빛, 감정, 분위기로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감정이 깊어진다.
박해일은 중국 배우인 탕웨이와 호흡을 맞추기 전에 고민이 컸다고 털어놨다. 다른 문화권의 배우와 연기를 하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 그러나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탕웨이의 배려심 넘치는 성격과 박찬욱 감독, 탕웨이가 구축한 송서래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니 고민은 없어지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또한 그는 탕웨이와 촬영 중간중간에 생기는 쉬는 시간에 함께 산책할 것을 제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캐릭터를 준비하고 완성해 나갔다고 말했다. 박해일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사람들끼리 한 작품 안에서 섞이고 휘몰아치는 감정을 감내하고 받아주려다 보니 서로 중간중간 컨디션 체크도 하고 힘도 불어넣어 주는 상황들에 도움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더라. 함께 산책해준 탕웨이 씨에게 고맙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사망사건으로 만나 서로를 알아가다 본인의 마음이 잘못됐음을 알아차린 해준은 서래에게 "나는, 붕괴되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붕괴의 뜻을 몰랐던 서래는 사전에서 단어를 검색해보고 '무너지고 깨어짐'이라는 붕괴의 완전한 뜻을 이해한다.
박해일은 "'붕괴됐어요'라고 하면 감정이 잘 전달될까 싶었다. '붕'자가 들어가니까 감정을 싣고 싶은데 잘 될까 싶었던 것"이라며 "해준의 입장에서는 품위와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긍심, 드라마의 초기에는 단단함을 가져가려고 했다. 어떤 식으로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 서래를 만나면서 해준은 감정의 바도 속에 붕괴돼 갈 것 같은 캐릭터로 시야를 잡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그 붕괴라는 단어는 해준에게 중요한 전환점에 대한 상황이고 전환을 알리는 중요한 단어"라고 덧붙였다.
또한 해당 장면을 연기할 때 중점을 둔 것에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고 난이도도 있는 신"이라고 말하면서 "촬영 2, 3일 전부터 세트장을 찾아가 혼자 리허설을 했다. 그만큼 저에게도 긴장이 됐던 장면이고 결국 촬영하고 나서는 속 시원히 잘 찍었다고 떠나보낸 장면이기도 하다. 시원하게 해소된 것이다. 저한테는 큰 숙제를 한 난이도 있는 장면이었다"라고 털어놨다.
박해일은 '헤어질 결심'의 의미에 대해 "박찬욱 감독님이 촬영하시기 전에 '어른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짧은 한 문장이 영화의 의미가 아닐까"라며 "박찬욱 감독님이 만든 세계 안에서 감정을 숨기고 대사를 해보고 느끼다 보면 배우도 성숙해지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하게 되면서 본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살인의 추억' 속 캐릭터인 살인자 이미지를 벗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고. 그는 "이번 계기로 다른 캐릭터로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 같아서 나름 충만해지는 기분도 든다"라고 첨언했다.
끝으로 박해일은 '박해일은 어떤 사람이냐'라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 "배우로 접근하면 '내게 뭐가 있기에 작품 속 캐릭터를 갖다 쓰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매번 있다. 부족하다는 얘기"라고 냉철하게 본인을 판단하면서도 "저라는 존재가 잊히고 드러내는 게 자신이 없어지면 작품이 되더라. 그래서 사실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깨달은 바를 전했다.
그는 "가끔 지인들에게 '너 같지 않고 전에 맡았던 캐릭터 같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라며 "저라는 존재는 많이 잊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찾으려고 노력 해야 할 때도 있다. 돌아보기도 하지만 일하는 쪽에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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