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당당한 체구에 깜짝 놀란다. 떡 벌어진 어깨, 신장 187㎝의 훤칠한 키, 100㎏ 가까운 체중은 누가 봐도 홈런과 연결지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는 미완의 대기에 멈춰 있었다.
터질 듯 터질 듯 안 터지는 그를 단념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오재일(30, 두산 베어스)은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데 성공했다. 프로 데뷔 12년째인 올해 타율 3할1푼6리 27홈런 92타점을 기록하며 두산이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는데 크게 힘을 썼다.
시작은 미약했다. 분당 야탑고 출신인 그는 2005년 2차 3라운드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장차 현대의 거포 1루수로 성장할 것이라던 기대가 무색하게 보여준 게 없었다. 데뷔 시즌 1군 1경기에 나선 뒤 상무 복무를 거쳐 2009년 히어로즈로 복귀했지만 43경기서 타율 1할9푼7리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2010년과 2011년 각각 홈런 1개를 기록한 뒤 소속팀의 '미래 플랜'에서 지워졌다.
앞이 안 보이던 그의 야구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12년. 외야수 이성열과 맞트레이드로 두산으로 이적하면서 새롭게 기회를 잡았다. 그 때까지 개인 최다인 87경기에 나서며 8홈런을 쳐내면서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55경기에서 타율 2할9푼9리 3홈런 28타점으로 제한된 기회에도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무엇보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한국시리즈 2차전 연장 13회초 '끝판왕' 오승환(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으로부터 결승 홈런을 쏘아올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14년 그는 외국인 타자 호르헤 칸투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1군과 2군을 수시로 오갔다. 떨어진 자신감 탓에 75경기에서 타율 2할4푼2리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오재일은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주전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그러나 1루수로 자리잡은 용병의 벽을 넘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이로 인해 동기부여가 안 돼 한동안 애를 먹었다"고 했다.
주춤하던 그의 야구인생은 지난해 김태형 감독이 부임하면서 또 다른 계기가 찾아왔다. 힘있는 거포를 중용하는 김 감독 체제에서 새롭게 자극을 받은 그는 시즌 중반부터 주전 1루수 자리를 굳혔고, 14홈런으로 개인 첫 두자릿수 홈런의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올 시즌 두산의 3번과 5번 타순을 오가면서 개인 최다인 105경기에 출전해 타율, 타점, 홈런 모두 개인 최고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는 이천 2군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김재환과 함께 두산의 새로운 파워히터 듀오로 자리 잡으며 타격 23위, 홈런 공동 8위에 올랐다. 타자의 종합적인 타격능력을 보여주는 OPS(1.003)는 프로야구 전체 6위였다.
오재일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은 "여건만 갖춰지면 리그를 대표하는 파워히터로 성장할 선수"라고 입을 모은다. 특유의 장타력에 타석에서 인내심이 뛰어나고 정교한 컨택트 능력도 갖췄다. 수비는 10개 구단 1루수 가운데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힌다.
오랫동안 기회와 동기부여가 성공의 관건이었지만 두 가지 필요조건을 갖춘 올해 마침내 리그의 대표적인 슬러거 중 하나로 자리잡은 것이다. 오재일은 "잘 했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좀 더 잘 해야 한다는 마음, 더 잘 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개인기록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지만 팀에 더 많이 공헌하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다"고 덧붙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묵묵히 때를 기다리며 준비한 와신상담 11년. 12년째에 따낸 성공의 열매는 그래서 더욱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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