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흥행 결과와는 별개로 평단과 일부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었던 '비밀은 없다'가 개봉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다. 상업영화로서 얼만큼의 대중성을 띠었는지와는 무관하게, '비밀은 없다'는 손예진의 진일보한 연기력을 확인시켜 준 작품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새 영화 '덕혜옹주'는 그가 지닌 깊은 연기폭을 또 한 번 실감케 한 작품이다. 타이틀롤로 분한 손예진은 '마지막 황녀'라는 역사 속 인물의 정체성 위에 개인 이덕혜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사를 흥미롭게 덧칠하는 데 성공했다.
2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 제작 호필름)의 개봉을 앞둔 배우 손예진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덕혜옹주'는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그린다. 2009년 발간된 베스트 셀러 소설 '덕혜옹주'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역은 배우 손예진이 열연했다.
지난 27일 진행됐던 '덕혜옹주'의 언론 배급 시사에서 손예진은 완성된 영화를 첫 관람했다. 언론인과 평론가들이 영화를 관람하는 상영관이 아닌 배급 관계자들이 착석한 배급관에서 영화를 봤던 손예진은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장에 예정보다 다소 늦게 모습을 보였다. 영화를 본 뒤 차오른 감정을 눈물로 쏟아낸 탓에, 카메라 앞에 서기 전 마음을 추스리고 메이크업도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 영화를 보다 운 것이 처음"이라고 말했던 손예진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어제의 감정을 돌이켰다. 그는 "이번 영화 촬영 후 집에서 느끼는 쓸쓸함과 허망감이 클 것 같아 크랭크업 다음 날 바로 여행을 갔다"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홍보를 앞두고 영상과 예고편을 처음 보는데, 굉장히 울컥하더라"고 입을 열었다.
"진짜 잘 안 그러는 성격이거든요.(웃음) 그런데 당시 (박)해일 오빠가 '너 영화 볼때 걱정이다. 되게 많이 울 것 같다'고 걱정하더라고요. 자꾸 그런 감정이 뒤늦게 더 많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내 영화를 냉철하게 보는 편이고, 항상 스스로 만족한 적도 한 번도 없는데다 보면서 잘 몰입을 못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냥 관객처럼 앉아서 옆에서 울며 봤어요. 저에게 솔직히 처음 있는 경험이었어요."
영화가 역사 속 실존 인물 덕혜의 일대기를 그리는만큼, 아역 배우 이채은과 김소현이 덕혜의 어린 시절을 연기해냈다. 손예진은 어린 덕혜의 모습을 시작되는 영화에 한 순간 몰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까진 영화들에서 처음부터 등장해 끝까지 나오는 역을 많이 했는데, 이번엔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화됐고 사실과 다를 수 있다'고 자막이 나올 때부터 이상하더라"고 당시의 기분을 돌이켰다.
"사진과 자막 같은 것도 쓰여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살짝 들어가고, 장한의 시점으로 고 영화 초반 제가 잘 안나오잖아요. 아역들의 연기가 있죠. 그것에 빠져 보게 된 것 같아요. 마지막엔 내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잘 모를 정도예요. 보통 자기가 자기 영화를 보며 우는 배우들을 이해하지 못 했고 저는 그러지 않는 사람이었거든요.(웃음) 이번 영화가 다른 지점을 가지고 있어서, 역사적인 지점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시대극의 주인공, 진폭 큰 인생사를 살았던 여성의 삶을 그리는 것도 쉽지 않았을 법한데 이 작품에 출연을 결정한 배경도 궁금했다. 손예진은 '외출'로 인연을 맺었던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 영화화 소식을 알게 된 뒤부터 이 영화 기획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서점에 갔다 사실 먼저 소설을 본 적이 있어요. '덕혜옹주'라는 인물에 대해 처음 알게 됐죠. 예전에 '리진'이라는 책을 보면서도 영화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예산 면에서 재현하기 어려울 것도 같더라고요. '덕혜옹주' 역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이고 실화잖아요. 하지만 (비슷한 이유로) 영화화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허진호 감독의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기사로 알게 됐어요. 여배우로서 탐나는 역할이었죠."
'덕혜옹주'는 허 감독의 8년 세월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기획과 시나리오 수정, 캐스팅 작업이 지난한 시간으로 흘러갔다. 손예진은 "우연히 영화제에서 허 감독님을 만났는데, 따로 오시더니 밥을 먹자고 하셨다"며 "그간 시나리오를 고치고 계셨는지 또 시간이 지난 뒤 캐스팅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비밀은 없다'를 찍고 있을 때 시나리오를 받았고, 한참 뒤 들어간 셈이죠. 투자 문제도 있었고 대본 내용도 처음과 달라졌어요. 구구절절 사연이 많았죠. 어제 8년을 준비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독님이 불쌍하더라고요.(웃음) 더 잘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작이 지연되는 중에도, 손예진은 '덕혜옹주' 프로젝트에서 떠나지 않았다. 쉼 없이 수많은 시나리오를 받는 톱배우가 촬영 시기도 불분명한 이 기획에 확신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인물이 지닌 매력 덕분이었다.
"부인할 여지가 없었어요. 여성의 일대기, 역사 속에 있었던 덕혜라는 인물의 일대기가 매력적이었거든요. 이런 비슷한 영화가 기획되는 일이 많지도 않고, 이런 역을 만나기 쉽지 않아요. 어떻게든 모든 것이 순탄하게 가서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았죠."
영화를 본 관객들은 덕혜라는 인물에 완벽히 빠져든 손예진의 연기에 혀를 내두를 법하다. 특히 예고 영상에서 살짝 등장하는, 해방 뒤 조선으로 돌아가려던 덕혜가 입국을 거부당하는 장면은 오랫동안 회자될 손예진의 명연기로 남을 전망이다. 시사 후 이미 '인생연기'라는 극찬을 얻고 있는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 정도 극찬을 받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죠. '인생 연기' '인생작'이라는 말은 배우에게 쉽게 오지 않는데, 그런 표현을 해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매년 달라지고 성숙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라면 그 순간에 그 감정만을 표현하기 위해 시각이 단순화됐을텐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연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해야지'가 아닌, '하다보니 그렇게 되는' 식으로, 더 넓어지게 되는거죠. 경험이 분명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는 오는 8월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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