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일본의 유명 배우 쿠니무라 준이 나홍진 감독과 함께 첫 한국영화 현장을 경험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레인'(1990)을 시작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1'(2003) 등 해외 쟁쟁한 감독들과 작업한 경험이 있는 그는 영화 '곡성'의 외지인 역으로 한국 관객을 만난다.
10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 제작 사이드미러, 폭스 인터내셔널 프러덕션(코리아))의 개봉을 앞둔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영화의 VIP 시사 참석을 위해 지난 9일 내한한 쿠니무라 준은 이날 인터뷰를 통해 한국 취재진을 만났다.
영화는 외지인이 나타난 후 시작된 의문의 사건과 기이한 소문 속 미스터리하게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일본의 유명 배우 쿠니무라 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지인으로 분해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쿠니무라 준의 필모그라피는 화려하다. 인기 드라마들은 물론 약 80편의 영화를 통해 일본을 대표할만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기타노 다케시와 함께 한 '피와 뼈' '아웃레이지'를 비롯해 '69' '이치 더 킬러' 등은 한국의 영화팬들에게도 친숙한 영화다. 비교적 최근작인 '지옥이 뭐가 나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갈증' '기생수 파트1' '진격의 거인 파트1' 등을 통해서도 국내 극장가를 누볐다.
영화 활동 초창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레인'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이후 타란티노의 '킬빌1'의 다나카 역을 통해 할리우드에 보다 또렷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이번엔 한국이다. '곡성'으로 처음 한국 영화 현장을 경험하게 된 쿠니무라 준은 이날 인터뷰에서 출중한 감독들과의 작업에 기쁨을 느낀다고 밝혔다. '곡성'에서와 달리, 실제로 만난 쿠니무라 준의 모습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진솔하면서도 재치있는 멘트들이 여러 차례 기분 좋은 웃음을 낳았다.
"저도 굉장히 행운이라 느끼고 있어요. 좋은 감독들과 작업을 할 수 있었죠. '곡성'을 함께 작업한 나홍진 감독도 굉장한 감독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리들리 스콧이나 쿠엔틴 타란티노, 나홍진 등 굉장한 감독들의 공통점은 개성이 강하다는 것이죠. 그 중에도 나홍진 감독은, 그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모르지만, 어느 순간 빠져들게 만들어버리는 매력이 있어요. 감독으로서 배우 안에 있는 모습을 꺼내는 기술, 힘이 굉장하다고 생각했죠. 그 능력이 대단해요."
지난 9일 VIP 시사에서 '곡성'의 완성본을 처음 본 쿠니무라 준은 큰 만족감을 표했다. 영화를 보며 자신도 몰랐던 얼굴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그는 "'나에게 이런 표정이?'라는 생각이 드는 발견이었다"며 "캐릭터가 독특했는데, 그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를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임하자고 다짐했었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촬영에 임할 때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떠올랐던 내 머릿속 이미지를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어제는 '그것이 저런 표정으로 나왔구나'라고 발견할 수 있었죠. 원래 모니터를 안 보며 연기하는 스타일인데,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항상 촬영을 하고 '커트'를 한 뒤 감독이 '오케이'를 했다면, 더는 상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은 '오케이'를 외친 분의 책임이 되니까요.(웃음)"
이번 영화를 통해 쿠니무라 준은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 방문한다. '곡성'은 올해 영화제의 비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그간 출연작 중 칸의 러브콜을 받은 영화도 있었지만, 직접 칸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데뷔 30여년 만에 첫 칸 레드카펫을, 그것도 첫 한국영화로 밟게 된 것에 대해 쿠니무라 준은 "기분이 조금 이상하긴 하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어 '일본의 국민 배우'라는 호칭에 대해 묻자 그는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그렇게 불린 것은 지금이 처음인데요?(웃음) 일본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런데서 오는 부담은 모르겠어요. '곡성'을 작업하면서는 아무래도 일본 배우로서 나쁜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해외에서 안좋은 이미지를 남겨놓으면 다음 사람들(해외 작업을 하게 된 일본 배우들)에게도 안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오전 진행된 인터뷰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에 대해 언급하자 쿠니무라 준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드라마와 영화들에서 그를 본 적이 있는 네티즌들이 반가움을 표한 것에 대해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영화에 참여했는데 나를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며 "내가 옛날에 일본에서 한 작품을 한국 관객이 보고, 나를 알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많이 기쁘다"고 밝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곡성'에서 쿠니무라 준과 가장 자주 마주친 배우는 아무래도 딸을 구하기 위해 외지인을 찾아나서는 종구 역 곽도원이었다. 이날 쿠니무라 준은 곽도원의 연기를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말하며 "역시 (국적과 상관 없이) 영화 작업을 같이 하는 이들의 마음은 다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고 돌이켰다.
"곽도원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원하고 노력해서 경험을 쌓고 영화에서 자신의 표현을 할 수 있는 자리를 갖게 된 케이스라고 들었어요. 저도 곽도원과 같거든요. 그도 연극에서 시작했고 저도 그런데, 일본도 한국도 연극 배우는 별로 돈을 못 벌죠. 경제적 여유가 별로 없어요. 스스로 노력해서 하고 싶었던 영화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어요. 다들 그런 뜨거운 마음을 갖고 영화를 하니 한국 배우들이 가진 현장에서의 에너지가 엄청난 것 같아요. 동기도 높고 에너지도 넘치고요. 배우와 배우 사이의 에너지가 부딪혔을 때 효과가 큰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한국영화가 힘이 있는 것 같고, 곽도원을 보면서도 그것을 느꼈어요. 정말 멋진 배우인 것 같아요."
나홍진 감독과 또 한 번 작업을 할 의사도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체력이 허락하는 한에는 하고 싶다"며 "나 감독과 함께 하려면 정신력도 필요하지만 일단 체력이 받쳐줘야 하겠다. 체력이 못따라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나 감독의 현장이 까다롭고 고되기로 유명한데도 그와 다시 영화를 찍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쿠니무라 준은 "아마 모든 배우가 다 같을 거라 생각한다"며 "촬영을 할 때는 '아, 싫어'라고 할 수 있지만, 끝나고 결과물을 보며 '아, 재밌다' 싶으면 힘들었던 기억이 다 없어지더라"는 답을 내놨다.
영화는 오는 11일 전야개봉으로 관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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