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김현수(28, 볼티모어 오리올스)도 빠져버렸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한국인 선수 사이에 계속되고 있는 지독한 '악연의 덫'이다.
김현수는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31일(이하 한국시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시범경기에는 또 결장했다. 최근 5경기 연속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면서 그 중 1경기에 대타로 출전한 것이 전부다.
볼티모어는 언론을 이용해 김현수에게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것을 종용하고 있다. 볼티모어 지역방송 MASN은 "벅 쇼월터 감독이 김현수가 결단을 내리기 전까지 그를 경기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결단이란 구단의 마이너리그행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김현수는 계약서에 의해 마이너행 거부권을 갖고 있는 상황. 김현수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내려면 그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만약 김현수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간다면 언제 메이저리그로 승격될 지 기약할 수 없다. 따라서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김현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버텨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라이언 사도스키 롯데 자이언츠 스카우트 코치는 지난 28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현수가 마이너행을 받아들이는 건 팀(볼티모어)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과 같다"고 김현수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서는 안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어 사도스키 코치는 "볼티모어는 선수와 계약조건을 지키지 않으려 한다"며 "팀은 선수를 방출하고 개런티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차라리 다른 팀 마이너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MLB에 데뷔해 볼티모어에 복수해주길"이라고 볼티모어 구단을 강한 어조로 비난하며 김현수를 응원했다.
사도스키 코치의 말대로 볼티모어가 김현수를 쓰기 싫다면 방출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김현수의 연봉을 볼티모어가 보전해줘야 한다. 결국 김현수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뒤 알아서 다른 팀으로 떠나주는 것이 볼티모어에게는 최상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물론, 볼티모어가 마이너리그에서 컨디션을 조절하며 기량을 끌어올린 김현수에게 추후 메이저리그 승격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볼티모어가 보여준 행태를 떠올려볼 때 그럴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불과 2년 전 윤석민(KIA)이 김현수와 비슷한 처지였다. 윤석민은 2013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획득, 볼티모어에 입단했다. 하지만 2014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한 뒤 결국 한 번도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이후 2015시즌을 앞두고 KIA로 이적, 메이저리그 도전을 마감했다.
볼티모어가 윤석민에게 메이저리그 등판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윤석민 역시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메이저리그에 올리면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낼 수 없기 때문에 기회 자체를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윤석민이 KIA에 재입단하면서 볼티모어는 윤석민의 잔여연봉을 아낄 수 있었다.
윤석민 이전에는 정대현(롯데)이 볼티모어와 악연을 맺었다. 2011시즌을 마친 뒤 FA 자격을 얻은 정대현은 볼티모어와 2년 계약에 합의했지만 메디컬테스트에서 탈락하며 국내로 유턴했다. 간 수치가 높게 나온 것이 정대현의 발목을 잡았다.
볼티모어는 한국 아마추어 야구와도 악연이 있다. 지난 2012년 2월 대구 상원고 2학년이던 좌완 투수 김성민과 계약을 맺었지만 이는 불법 계약이었다. 볼티모어가 졸업 예정 선수만 접촉할 수 있다는 규정을 어겼기 때문. 결국 볼티모어는 한국에서 고교야구 출입금지 처분을 받았고, 김성민과의 계약을 철회했다.
유망주였던 김성민의 야구인생도 꼬였다. 볼티모어와의 계약으로 대한야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자격 정지 중징계를 받은 것. '야구 미아'가 돼버린 김성민은 이후 일본 후쿠오카 게이자이대학에 입학해 야구인생을 이어나갔다.
이 밖에 투수 윤정현, 외야수 강경덕도 고교 졸업 후 볼티모어에 입단했지만 두 선수 모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 강경덕은 팀을 떠났고, 윤정현은 싱글A에 머물고 있다.
볼티모어의 상징 오리올(oriole)은 꾀꼬리다. 듣기 좋은 음성을 가진 꾀꼬리의 지저귐이 한국 선수들에게는 위험한 유혹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현수가 볼티모어와의 악연을 어떻게 돌파해나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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