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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말아요', 항저우와 함께 변화하는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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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아픔 잊고 중국서 프로 감독으로 첫 도전, "나는 정말 자유롭다"

[이성필기자] "수많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보면서 참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여기서 다시 보게 되네요."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뤼청 사령탑을 맡은 홍명보(47) 감독은 1992년 베이징에서 열렸던 다이너스티컵을 회상했다. 당시 경기가 열린 베이징 노동자 경기장 앞의 자전거, 오토바이 행렬을 보며 놀랐었는데 항저우로 와 황룽 경기장에서 그런 모습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홍 감독은 항저우의 홈구장 황룽 경기장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인 숙소에 머물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전지훈련까지 마치고 항저우에 온 지 2주가 채 되지 않아 아직 현지 사정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1시간여 거리의 클럽하우스와 숙소를 왕복하고 경기장을 가본 것이 전부다. 워낙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 체중도 빠지고 턱선은 검게 그을렸다.

항저우 시민들의 반응도 아직은 미미하다. 기자와 함께 숙소에서 경기장을 도보로 왕복하는 30여분 동안 홍 감독을 알아본 항저우 시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신호 대기 중 "어!"하는 표정을 지은 젊은 대학생 1~2명 정도가 홍 감독을 알아봤을 뿐이다. 숙소와 경기장 사이에는 중국 명문대 중 한 곳인 저장대학교가 있다.

홍 감독은 다소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차라리 자신을 알아보지 않는 게 지금으로서는 속이 편하다는 입장이다. 항저우가 다른 중국 내 도시보다 축구 열기가 조금은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왔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항저우는 중산층도 많고 여유로움이 있는 도시처럼 느껴진다. 팀 성적도 매년 고만고만했으니 그동안 큰 관심을 받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6일 항저우가 창춘 야타이와 치른 개막전 입장 관중은 1만1천273명이었다. 5만석이 넘는 관중석의 20%정도만 채워졌다. 슈퍼리그 1라운드 전체 관중은 7경기(톈진 테다-베이징 궈안전 순연) 총 18만5천825명이었다.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2-1로 잡은 장외룡 감독의 충칭 리판이 4만8천855명의 관중을 모았다. 항저우보다 적은 관중을 기록한 팀은 장현수가 뛰는 광저우 푸리(9천889명)가 유일했다.

홈팀 항저우가 창춘을 2-1로 이긴 뒤에도 가장 큰 환호를 받은 인물은 6개월 단기 계약을 맺은 팀 케이힐(호주)이었다. 케이힐의 열정적인 움직임에 항저우 팬들은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물론 구장에는 구단 엠블럼과 홍 감독의 얼굴이 크게 그려진 대형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했다.

외부적인 여건이나 시선과는 상관없이 홍 감독은 마음 편하고 즐겁다. 소신껏, 자유롭게 팀을 지휘할 힘을 얻어 출발했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지난 1월 항저우로 출국하며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해보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한국대표팀 감독으로서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본 이후 그는 '실패한 지도자'로 찍혔다. 월드컵 대표팀을 맡아 단 1년 만에 본선 준비를 해야 했던 특수성은 초라한 성적 앞에서 반영되지 않았다. 지도력 외 선수 선발 관련 문제가 불거지면서 홍 감독에게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이 붙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홍 감독에게 출국 당시 발언의 진의를 물었는데 답은 확고했다. 그는 "나는 정말 자유롭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고 책임을 질 것이 있으면 지면 된다. 눈치를 볼 것도 없다. 그동안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 늘 보이지 않는 압박이 있었지만 항저우는 아니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간다는 꿈이 생겼다. 여기서 많이 배워가려고 한다"라며 처음으로 프로팀 감독을 맡게 된 것에 설렌다는 반응을 보였다.

홍 감독의 오랜 지인도 비슷한 설명을 했다. 그는 "그동안 국가대표라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가. 매번 결과에 따라 국가라는 짐이 그에게 있었는데 이제는 잠시 그 무게를 줄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참 긴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라고 전했다. 새로운 꿈을 가진 홍 감독에게 과거의 아픔을 다시 확인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항저우는 K리그 팀과 씀씀이 수준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 삼성과 FC서울 사이 정도로 구단 운영비를 쓴다고 한다. 광저우 에버그란데나 장쑤 쑤닝처럼 선수 영입에 1천억원 이상 지출하는 대형 클럽이 아니다. 국제적 스타 선수도 없지만, 홍 감독이 익숙해 있고 또 원했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젊은 선수는 많다.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 중국대표팀으로 나섰던 미드필더 펑강(23)은 잠재력이 있어 지켜보는 중이다.

홍 감독은 "대표팀은 금방 모였다가 경기를 치르면 헤어지는데 여기는 아니다. 내일 다시 (선수들을) 본다는 생각을 하니 참 즐겁다. 젊은 선수들을 키워내는 것은 보람이 있는 일이다. 그런 재미로 프로팀을 하는 것 아닐까. 주변에서는 나보고 국가대표랑 프로팀은 다르다고 하는데 나는 아니다. 감독을 하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항저우 구단도 홍 감독의 생각과 같이한다. 경기장 중앙 출입문에는 항저우 구단이 내건 '干在实处永无止境 走在前列要谋新篇(=현장에서의 실천에는 한계가 없고 전열에 나서서 새로움을 도모한다)'이라는 격문이 붙어있다. 홍 감독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일종의 캐치프레이즈인 셈이다. 사회주의 문화가 담긴 특유의 투쟁적인 문구를 앞세워 홍 감독을 통해 팀의 1차 목표인 슈퍼리그 잔류를 위해 함께 화합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라고 한다.

항저우 개막전을 취재했던 텐센트 스포츠의 리위안지예 기자는 "중국 선수들은 지도자의 경력이 화려하면 기대감을 갖는다. 항저우는 어린 선수들이 많은데 홍 감독이 딱 그에 맞다고 봐야 한다. 중국 정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월드컵 경험도 풍부하지 않은가. 항저우 구단도 이런 부분에 기대를 건다고 하더라. 아직 홍 감독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아닌데 경기를 치르면서 존재감이 퍼지지 않을까 싶다"라고 전했다.

홍 감독도 구단을 서서히 바꿔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선수들의 영양분 섭취 습관부터 바로잡고 있다. 구단 식당에 우유와 탄산이 섞인 음료가 있는 것을 보고는 조리원 등 관계자들에게 얼마나 남아 있느냐고 물은 뒤 "선수들 주지 말고 당신들이 이것을 다 마셔라"라며 올바른 식단 짜기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체지방을 높이는 케이크 등의 섭취도 줄이도록 권고했다.

태국, UAE 전지훈련에서의 하루 세 차례 훈련도 체력과 정신력을 함께 만들기 위함이었다. 아침 식사 전 가벼운 러닝과 오전, 오후 훈련으로 나눠 실지했다. 처음에는 러닝부터 힘들어하는 선수들이 있어 애를 먹었지만, 서서히 적응하면서 알아서 훈련하더란다. 경쟁에서 뒤지면 활용하지 않겠다며 홍 감독이 추상같은 메시지를 전달한 결과다.

자유인이 된 홍 감독은 좋은 성적보다는 내실 있는 구단과 선수단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어차피 결과는 마지막에 나지 않는가.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가는 그 때 가서 다시 받아도 되지만 어떤 결과가 나와도 괜찮다. 일단은 슈퍼리그 생존에 집중하겠다"라며 중국에서 지도자로 값진 수업을 받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조이뉴스24 /항저우(중국)=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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