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중국 상무부의 2015년 발표에 따르면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항저우 뤼청의 연고지인 저장성 항저우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3대 도시가 2만 달러를 넘었거나 근접한 가운데 항저우는 충칭, 톈진, 우한, 선전, 청두, 쑤저우 등과 함께 중국 내 GDP 상위 10위권 도시로 집계됐다고 하네요.
홍명보 감독의 뤼청 사령탑 데뷔전을 보기 위해 지난 4일 항저우를 찾았습니다. 기자는 그동안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3대 도시는 물론 둥관, 시안, 선양, 우한, 톈진, 친황다오, 창저우, 청두, 쿤밍 등 중국의 중소 도시들을 취재 또는 여행으로 간 경험이 있습니다.
이들 도시의 대부분이 슈퍼리그나 갑급리그(2부리그) 팀들의 연고지입니다. 국내 팬들도 잘 아시겠지만 베이징 궈안, 상하이 선화나 상강, 광저우 에버그란데나 푸리 등 슈퍼리그 강팀들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죠. 구단들의 씀씀이가 워낙 통이 커 놀랄 정도죠.
위의 도시들의 경우 해당 구단의 경기 홍보는 공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도심 안으로 들어오면 확실히 축구 경기를 하는 분위기가 나고요. '축구 굴기'를 내세운 시진핑 주석의 정책에 따라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광저우를 찾았을 때만 해도 시민들이 에버그란데 팀의 존재 자체를 몰랐지만, 지금은 도시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항저우는 조금 다른 분위기입니다. 도심 곳곳을 찾아봐도 항저우 축구단을 알리는 상징물이나 경기 일정 홍보물조차 눈에 띄지 않습니다. 6일 창춘 야타이와 슈퍼리그 홈 개막전을 앞두고 있는데도 말이지요. 경기장 주변을 돌아봐도 그 흔한 구단 용품샵도 보이지 않습니다.
슈퍼리그 전체 구단의 용품 스폰서인 나이키 매장에라도 가보면 항저우 구단 용품을 팔지 않을까 싶어 시내 대형 쇼핑몰 인타이(銀泰)나 항저우 따샤백화점(杭州大厦) 등을 샅샅이 뒤졌지만,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따샤백화점 나이키 매장 책임자라는 자오윈구엉 씨는 "예전에도 항저우 구단 용품은 팔았던 일은 없다. 왜 팔아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라는 대답을 하더군요. 일반 제품이 잘 팔리는데 굳이 축구단 관련 스포츠용품까지 들여놓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죠. 다만 예외는 있더군요. 중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중 하나인 미국프로농구(NBA) 관련 용품은 반드시 갖춰놓고 있더군요.
K리그 수원 삼성의 용품제작사이면서 슈퍼리그 허베이 화샤 싱푸 등 몇몇 구단의 용품 제작, 공급을 맡은 백승남 다이브인풋볼 대표는 "항저우는 축구 황무지라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하더군요. 즉 도시 소득이나 소비 수준이 워낙 높아서 열성적인 팬들이 있다 하더라도 인터넷 주문으로 구매하지 매장에서 사지 않는다는 겁니다. 홍명보 감독도 "아직 구단이 전통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용품을 갖출 수 있는 체계가 없는 것 같다"라고 아쉬워하더군요.
항저우의 홈구장 황룽 경기장은 무려 5만 2천여석이나 됩니다. 그런데 경기당 평균 관중 동원 능력은 1만 명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평균 1만2천566명, 2014년 1만3천788명 등 슈퍼리그 중하위권의 관중 동원입니다. 관심과 구매력이 떨어지는 팬을 보유하고 있으니 축구가 다른 도시들과 달리 생활 속으로 쉽게 빠져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항저우 뤼청이 2010년 4위를 했던 것을 제외하면 중하위권 성적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구단이 경쟁해야 할 것은 정말 많습니다. 경기장 바로 인근에는 중국 최고의 관광지 중 한 곳인 시호(西湖)가 있습니다. '동적인 미는 나이아가라 폭포, 정적인 미는 시호'라고 불릴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니 말 다했죠. 교통체증은 극에 달합니다. 기자가 가봤던 도시들 중 거의 최악 수준이더군요. 택시로 15㎞ 거리를 이동하는데 교통체증으로 40분 만에 도착했으니 말입니다. 주택단지 역시 빈민가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여유도 있고 할 것도 많은 도시 분위기라는 뜻이죠.
항저우 도심은 여기저기 한참 공사 중입니다. 올해 9월 4~5일에 제11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해외 정상들이 지나갈지도 모르는 곳의 도로 보수와 건물 리모델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겉보기에 좋은 것을 보여주는 것을 최고의 국력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식 방식을 올림픽을 치렀던 2008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도시 2010년 광저우에 이어 항저우가 그대로 따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철근을 조립하고 산소 용접하는 소리가 거리 곳곳에 퍼지고 있고, G20을 성공적으로 잘 치러보자는 문구들이 가득합니다.
한류도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애초 항저우의 개막전은 5일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 체육관에서 가수 비가 콘서트를 하는 바람에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을 우려한 구단과 공안에서 항저우의 홈 개막전을 하루 연기했다고 하네요. 홍 감독도 몰랐다가 뒤늦게 구단으로부터 전해 들었으니 기분이 얼마나 묘했을까요. 이번 달에만 CNBLUE(씨엔블루), 빅뱅, 김종국 등 한류 스타들이 잇따라 콘서트를 열더군요. 항저우 TV에서 '런닝맨'을 방영하면서 홍 감독보다는 연예 중심의 한류가 항저우를 뒤덮고 있습니다.
분산되는 관심과 여유 있는 도시 분위기에서 홍 감독과 항저우 구단이 제대로 바람을 일으켜 축구 열기에 빠트릴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무게를 내려놓고 새 출발하는 홍 감독은 "이제는 자유롭게 열심히 해보겠다"라며 구단을 서서히 항저우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힘을 내겠다고 합니다. 과연 홍 감독의 새 도전이 어떤 출발을 할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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