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90분 동안 '영원한 리베로'는 총 57회 벤치에서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했다. 긴장으로 인한 초조함이 묻어 나왔지만, 생각보다 골이 빨리 터지자 표정은 환하게 풀렸다.
6일 오후(한국시간)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황룽 경기장, 2016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뤼청-창춘 야타이의 경기가 열렸다. 경기 시작 다섯 시간 전부터 경기장 동문 광장에는 노점상 14곳이 좌판을 깔고 호객 행위에 나섰다.
항저우 팬들에게는 리그 개막전이라는 설렘이 있었지만,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3차전 벨기에전 이후 처음으로 지도자로 복귀해 데뷔전을 갖는 홍명보 감독의 슈퍼리그 첫 경기라 관심이 쏠렸다.
전날(5일) 갑급리그(2부리그) 승격팀 옌볜 푸더가 호화멤버의 상하이 선화에 1-1로 비기면 박태하 옌볜 감독이 지도력을 보여줬다. 또 이날 충칭 리판은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2-1로 이기면서 장외룡 충칭 감독이 끈끈한 축구를 선보이기도 했다. 슈퍼리그에서 한국인 감독들이 승전보를 잇따라 전한 가운데 결과에 초연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해보겠다고 한 홍명보 감독이었지만 비교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관중석에는 홍 감독의 부모님을 비롯해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고문, 김석한 전 중등연맹 회장, 박건하 축구대표팀 코치와 다수의 지인 및 항저우 교민들이 응원차 방문했다. 홍 감독은 경기 시작이 임박해서야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주심의 호각이 울리고 홍 감독은 벤치에 앉아 데뷔전을 시작했다. 항저우는 홍 감독이 자주 사용하는 4-2-3-1 포메이션에 기반을 둔 안정형 전술을 들고 나왔다.
홍 감독과 함께 항저우 유니폼을 입은 오범석이 중앙수비수로 전체를 조율하고 호주 국가대표 공격수 팀 케이힐이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다. 최근 5년간 개막전 무승, 지난해 두 번 맞대결에서 2패를 기록한 창춘을 상대로 홍 감독이 이끄는 항저우는 시험대에 올랐다.
출발은 좋았다. 4분 만에 오범석의 발에서 출발한 볼이 천포량에게 닿아 골이 됐다. 홍 감독은 아이처럼 기뻐하며 옆에 있던 통역과 코치진을 격하게 끌어안았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홍 감독 특유의 포효였다. 이후 홍 감독은 기술지역 좌우 끝을 쉼 없이 오갔다. 21분 항저우가 페널티킥을 얻어 케이힐이 골을 넣으며 2-0이 되자 홍 감독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오랫동안 보기 어려웠던 홍 감독의 미소가 돌아오는 날이었다.
조중연 고문은 "잘 할 거고 좋은 결과도 나올 것이라 믿는다"라며 홍 감독의 중국에서의 성공을 기원했다. 홍 감독의 한 지인도 "시작이 힘들겠지만 잘 해냈으면 한다. 이제는 대의라는 무게를 잠시 내려놓지 않았는가. 슈퍼리그가 홍 감독의 축구 인생에 하나의 이정표가 됐으면 한다"라고 응원했다.
데뷔전이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후반 20분 창춘의 마르셀로에게 실점하며 한 점 차로 쫓기면서 수비가 흔들렸다. 35분 오범석이 볼 경합 과정에서 타박상 부상을 당해 벤치로 물러난 뒤에는 더욱 어려웠다. 그럴수록 홍 감독은 침착했다. 필요한 선수를 교체하며 추가 실점 막기에 힘을 기울였다. 41분에는 상대의 슈팅이 골대에 맞고 나오는 등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항저우의 버티는 힘이 좋았다. 운까지 따랐다.
추가시간 5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고 주심의 호각이 울리며 항저우의 2-1 승리로 종료되자 홍 감독은 정장 상의 단추를 풀고 두 팔을 들어 환호하며 선수단과 꼭 껴안고 승리를 즐겼다. 프로 사령탑 데뷔전이라는 부담에도 초연했던 홍 감독의 슈퍼리그 데뷔전은 그렇게 끝났다. 항저우 홈팬들이 전원 기립해 홍 감독의 승리를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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