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부산시가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동집행위원장을 해촉할 것으로 알려지며 국내외 영화계에 파장이 예고됐다.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 이후 시작된 대립이 극단적 결과로 이어졌다. 영화제는 지난 20년 간 지켜 온 독립성에 처참한 상처를 입었다.
지난 16일 부산시는 매년 2월 열렸던 정기 총회 개최를 보류하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해촉하겠다는 내부 입장을 드러냈다. 지난 2014년 10월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과 관련해 촉발됐던 시(市)와 영화제의 갈등은 1년여 간 지속돼왔다. 영화제의 독립성을 해쳤다는 비판 아래서도 부산시는 영화제를 향한 압력을 거두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통상 매년 2월 정기총회를 열고 위원장의 재선임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 1년여 간 영화제가 부산시와 대립을 겪었던 만큼 이번 총회의 결과가 갈등의 봉합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관심을 모았지만 부산시는 총회를 열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임기가 2월까지인 이 위원장은 이달 내 재선임되지 않으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영화제 측에 공식적으로 이같은 내용을 전달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상 해촉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2월 말까지도 부산시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 해촉은 물리적 사실이 된다.
영화제와 부산시의 갈등은 지난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상영작에 세월호 참사 이후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이 포함되면서부터였다. 상영 계획 취소를 요구했던 부산시와 이를 수용하지 않은 영화제의 갈등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영화제 예산 삭감, 부산시의 영화제 쇄신 요구 등으로 이어졌다.
이후 영화제 측과 한국 영화계 주요 인사들이 공청회를 마련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등 유의미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갈등 해결로 이어지진 않았다. 배우 강수연을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위촉하며 쇄신을 꾀한 영화제는 지난 2015년 10월 제20회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내실 있는 프로그램으로 호평을 얻은 것은 물론, 역대 최다 관객수를 기록하고 20돌의 상징에 걸맞게 국내외 유명 스타들을 맞이하는 등 명성도 지켰다.
그러나 행사 폐막 이후인 지난 2015년 12월 부산시가 이 집행위원장을 회계부정으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이번 해촉 움직임 역시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16일 JTBC '뉴스룸' 보도에 따르면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은 "감사원 감사에 의해 (영화제 회계부정) 지적을 받고 그걸 우리가 고발했는데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재추천한다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알렸다. 회계 상 실수라는 영화제 측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아온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제영화제다. 해외 예술 영화 거장들의 작품부터 국내 출중한 독립 영화들까지, 규모와 장르의 면에서 넓은 스펙트럼의 영화들을 세계 영화인들에 소개했다. 영화제의 상영작 초청은 출품 국가별 프로그래머의 고유 권한이다. 집행조직의 수뇌인 위원장이라 해도 합당한 이유 없이 출품작 리스트에 손을 대지 못한다. 부산시의 '다이빙벨' 상영 철회 요구는 20년 역사 속 전례 없는 외압이었다.
영화제의 시작부터 힘을 보태 온 이 위원장은 지난 2007년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영화제를 이끌기 시작했다. 이 위원장이 동료들과 함께 이어온 영화제의 정신이 그의 해촉 이후에도 계승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이 짙다. 특정 영화 상영과 관련해 가불가의 입장을 내놓고, 이를 따르지 않은 영화제 조직의 리더를 물러나게 만든 부산시가 차후 같은 모양새로 압력을 가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부산시의 결정은 이번 사태에 대해 하나로 뭉친 영화계의 목소리와도 완벽하게 엇갈렸다. 영화 수입 배급사의 대표이자 예술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는 한 영화인은 이 위원장의 해촉과 관련해 자신의 SNS에 '나와 관계된 해외 영화사 프로듀서들, 제작사와 함께 그 어떤 영화도 상영을 거부할 것'이라고 알렸다.
지난 1월 한국영화기자협회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제7회 올해의 영화상' 올해의 영화인상을 수여했다. 이는 20년 간 영화제를 이끌어 온 이 위원장의 공로를 인정한 것 뿐 아니라 지난 1년여 간 이어져 온 대립의 끝에서 고군분투 해 준 영화제 집행조직에 대한 격려이기도 했다.
이장호, 이준익, 봉준호, 최동훈, 류승완, 변영주, 정윤철 등 한국영화감독조합 소속 감독들은 '#아이서포트BIFF(#ISUPPORTBIFF)' 피켓을 들고 영화제를 향한 공식적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국내 주요 영화제는 물론이고 칸과 베를린, 베니스 등 해외 주요 영화제, 세계적 감독들의 지지 선언도 화제가 됐다. 차이밍량,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아장커, 구로사와 기요시 등은 지지 영상을 보내왔다.
영화계의 우려에도 외압은 그치지 않았다. 관객과 영화인들의 자랑이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치 권력의 논리에 만신창이가 됐다. 발단은 단 한 편의 영화였다. 20년을 쌓은 탑이 흔들리는 데에 17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탄압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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