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최근 프로야구의 흐름에는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고의 '부자 구단'으로 꼽히던 삼성 라이온즈가 지갑을 굳게 닫기 시작했다. SK 와이번스도 무리해서 내부 FA를 잡거나 외부 FA 영입을 하지 않고 '육성'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야구단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가 창단 후 벌써 9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런 추세와 최근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는 구단이 바로 한화 이글스다. 한화는 지난 시즌 후 FA시장에서 정우람을 4년 총액 84억원에 영입하는 등 총 191억원을 투자했다. 2013년 정근우와 이용규의 동시 영입을 시작으로 최근 3년 간 FA시장에서 쓴 돈이 무려 465억원에 이른다.
한화 구단 측은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팀 성적에도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고 최근 공격적인 투자 이유를 설명한다. 팬들의 열렬한 요청이 있던 김성근 감독의 선임을 결정한 배경도 그와 일맥상통한다.
◆돈을 쓰고 안 쓰고의 문제 아니다
김성근 감독은 "각 팀마다 사정이 있겠지"라며 "돈을 쓰고 안 쓰고의 문제가 아니다.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고 최근 프로야구의 달라진 추세에 대한 견해를 드러냈다. 방향 설정을 위해 김 감독이 꼽은 키워드가 '변화'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된다. 2007년 나하고 김경문 감독하고 한국 야구를 바꿔놨다는 얘길 누가 하더라. 정말로 그 때 한국 야구가 많이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느냐. 스피드였다.
2006년에 지바 롯데에 (인스트럭터로) 있다가 나리타공항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려고 있는데 TV에서 일본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하고 있었다.
니혼햄 모리모토(히초리)가 2루 주자로 나가 있었고. 이나바(아츠노리)가 내야안타를 쳤는데, 모리모토가 홈에서 여유있게 살았다. 그걸 보고 아차 싶었다.
내야안타로 어떻게 2루 주자가 홈까지 들어올 수 있을까. 스킵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하고, 스타트를 언제 끊어야 하고. 그런 것을 고민하면서 SK 야구가 만들어졌다.
2007년 4월까지는 우리(SK)를 못 막았다고. 그런데 5월부터 우리가 거꾸로 두산한테 당하기 시작했어. 김경문 감독이 따라붙은 것이다. 지기 싫어하는 김경문 감독이. 그래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김경문 감독."
우연히 일본 프로야구의 한 경기를 시청한 것이 계기가 돼 영감을 얻은 김 감독은 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는 한국 프로야구의 추세를 바꾼 커다란 변화로 이어졌다.
2000년대 후반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와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두산은 한 베이스를 더 가고 한 베이스를 덜 주는 야구를 펼쳤다. 두 김 감독이 주도한 이른바 '발야구'는 한국 야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8년 김경문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고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확한 원동력도 한국식 스피드 야구, 짠물 수비에서 찾을 수 있다. 베이징올림픽 당시를 떠올리며 김성근 감독은 "달라진 한국 야구에 일본이 당황했다"며 "정신없이 뛰면서 흔들어놓으니까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견(見) 관(觀) 진(診)…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익숙함에 길들여지면 현재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싹트는 법이다. 김 감독은 변화를 위해서 보는 눈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본다는 것에는 3가지가 있다. 견학의 견(見)이라는 것이 있고, 관광의 관(觀)이 있다. 또 의사가 진찰할 때쓰는 진(診)도 보는 것이다.
내야안타로 2루 주자가 득점하는 걸 보고 '저런게 있구나'하고 그치면 그건 견(見)이다. '이야~ 멋있다' 하면 관(觀)이다. '저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고 연구하면 그게 진(診)이 된다.
나는 그걸 보고 들어와서 밤새가면서 SK 야구를 만들었다. 30센티미터로 아웃, 세이프가 결정난다. 30센티의 싸움이라고. 원래 나는 (팀자체)청백전을 많이 안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청백전을 많이 했다. 실전에서 시험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스피드 싸움을 시작했고, 그게 바로 변화였다."
이같은 김 감독의 생각은 위기 의식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KBO리그가 700만 관중을 돌파했지만, 결코 기뻐할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다.
김 감독은 "한화만 보더라도 7,8월까지는 평균 관중이 1만명이 넘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관중 수가 줄었다"며 "일본 야구도 요미우리의 시청률까지 다 떨어지고 있다. 요즘엔 축구에 밀린다고 하더라. 우리도 (그런 위기가) 온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위기를 맞기 전, 변화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뜻이다. '진(診)'의 시각으로 발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선수들에게 전하는 조언에도 잘 나타난다.
김 감독은 권혁, 박정진, 송창식 등의 피로 누적 우려에 대해서 "어떻게 변화를 갖느냐의 문제다. 권혁의 경우 투구수를 줄이면 혹사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다"며 "부족한 점, 뭘 시도해야 할 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변화와 새로움을 강조했다.
◆FA 영입은 인스턴트 음식 먹는 격
김성근 감독은 "FA 영입은 인스턴트"라며 "밥을 먹을 때도 빨리 먹으려면 인스턴트 음식을 사먹으면 된다"고 비유했다. 외부 영입이 팀을 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한화의 최근 적극적인 투자는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팀 전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본적인 전력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로는 새로운 선수들을 키워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현재 한화는 두 가지 큰 뼈대로 구성돼 있다. 구단의 투자, 그리고 김 감독이 지휘하는 강훈련이다. 투자를 통해 즉시 전력감 선수를 보강했고, 김 감독의 조련으로 기존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린다. 그 두 가지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한화의 희망 시나리오다.
한화는 15일 일본으로 떠나 스프링캠프를 시작한다. 몸상태가 갖춰지지 않았다며 정우람과 김태균 등 몇몇 투타 핵심 선수들이 캠프 명단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강훈련을 소화하겠다는 김 감독의 숨은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8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한화다. 김성근 감독의 부임 첫 시즌이던 지난해 역시 막판까지 5강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은 6위에 그쳤다. 올 시즌은 오랜만에 가을야구 진출을 꿈꿔볼 전력이 갖춰져 있다. 독수리 군단이 인스턴트에서 벗어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할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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