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사실상 FIFA(국제축구연맹) 회장 선거 출마로 가닥을 잡은 정몽준(64)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의 도전은 승산 있는 게임일까.
정 명예회장은 내년 2월 26일로 예정된 FIFA 차기 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하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른 시일 내 해외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한다는 구상이다.
회장 선거 로드맵은 빡빡하다. 당장 25일 2018 러시아월드컵 유럽, 남미 조 추첨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국제 축구계 인사들을 만나 얼굴을 알리기에 좋은 행사다.
2011년 아시아축구연맹(AFC) 몫으로 배정된 FIFA 부회장 선거에 낙선한 정 명예회장은 4년 가까이 야인으로 살았다는 점에서 이번 회장 선거가 쉬운 도전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은 충분하다. 10월 26일 차기 회장 선거 후보 등록 마감일까지는 3개월이나 남았다.
1994~2011년까지 FIFA 부회장을 지내며 개혁 이미지가 강한 정 명예회장이기에 인지도는 충분하다. 정 회장 퇴임 당시 FIFA가 최초로 '명예 부회장'으로 추대하는 등 업적에 대한 예우는 확실했다.
다양한 조직에서 경영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도 FIFA 개혁의 적임자일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인다. 정 명예회장은 FIFA 부회장은 물론 대한축구협회 회장, 현대중공업 회장, 새누리당 대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리더 역할을 했다. 숱하게 치러본 국회의원 선거 경험도 큰 도움이다.
정 명예회장의 한 측근은 "정 회장은 승산이 없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하는 스타일이다. 이번 건도 FIFA와 각 대륙연맹의 분위기를 살핀 뒤 내린 결정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FIFA 선거가 블래터 현 회장 체제에서 진행된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회장직을 내려놓겠다고는 했지만, 블래터의 여전한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또, 블래터가 사사건건 정 회장의 발언에 불만을 터뜨리는 등 대립각을 세워왔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출마 예상자로 꼽히는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은 지난 5월 선거에서 블래터의 5선을 막는 데 실패했지만 과거에는 블래터의 우호 세력이었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상황에서 플라티니의 마음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플라니티는 정 회장과 깊은 관계를 맺지는 않았지만 반대 세력은 아니다.
측근은 "지난 6월 출마 가능성에 대한 기자회견을 한 뒤 만난 플라티니가 정 회장에 대해서 특별히 나쁜 생각을 갖지 않은 것 같았다. 대화를 잘 풀어나간다면 서로 협력도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후보인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는 복병이다. 2011년 FIFA 부회장 선거에서 정 회장의 5선을 막은 인물이다. 총 투표수 45표 중 25표를 얻어 20표의 정 회장을 제쳤다. 지난 5월 FIFA 회장 선거에서는 플라티니의 지지를 받았지만 1차 투표에서 73-133으로 블래터에 완패한 뒤 2차 투표를 앞두고 사퇴했다.
중동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2011년 정 회장은 중동 왕실의 복합적인 구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패했다. 이번에는 알리 왕자를 비롯해 중동 왕실의 대립과 우호 관계만 잘 알아도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2년 임기의 FIFA 집행위원인 셰이크 아흐마드 알 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과 알리가 서로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잘 파고들어야 할 필요도 있다"라고 조언했다.
알 사바 의장은 차기 FIFA 회장 출마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꼽혔다. 블래터의 갑작스러운 사태로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이번 회장 선거에 나설 수 있다. 국제 축구계 구도에서 잠시 멀어졌던 정 회장이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인물인 셈이다.
조심스러운 부분은 FIFA 관련 비리가 계속 터지는 상황에서 정 회장도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부분이다. 2002 한일월드컵 유치 상황을 두고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서방 언론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등 과거 월드컵에 대한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2022 월드컵 유치전에서 잉글랜드에게 등졌던 정 회장이기에 유럽 언론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다양한 변수가 숨어있는 장기 레이스에서 견딜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할 정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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