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기자] 임성한 작가는 매 작품 논란을 달고 산다. '막장' 작가라는 반갑지 않은 수식어도 늘 따라다닌다. '압구정 백야'는 또다른 문제작이 됐다.
'압구정백야'는 10%대 중반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 시청률로만 봤을 때 고만고만한 성적이다. 이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일일드라마도, 주말드라마도 많다. 그런데 화제성은 단연 압도적이다.
드라마 초반만 해도 잠잠하다 싶더니 임성한 작가는 언제부턴가 친절하게도 매회 논란의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시청자들은 이를 조롱하기에 바쁘다.
지난 25일 방송만 해도 그렇다. 주인공 장화엄(강은탁 분)과 백야(박하나 분)가 드디어 첫키스를 하고 시청자들이 이들의 로맨스에 감정을 몰입하려는 찰나, 산통은 어김없이 깨졌다. 뜬금없는 만우절 장난이 튀어나온 것. 장추장(임채무 분)이 문정애(박혜숙 분)에게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음을 고백했고, 육선중(이주현 분)이 어머니 오달란(김영란 분)에게 "출가 결심했어요"라고 말하며 무릎을 꿇었다. 이 뜬금없는 전개에 어안이 벙벙했을 시청자들에게 등장인물들은 "오늘 만우절이라면서요"라고 웃었다. 그야말로 황당한 '만우절' 스토리였다.
그뿐인가. 육선지(백옥담 분)는 사극에나 등장할 것 같은 한복과 쪽머리를 하고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시어른들이 다리 내놓고 다니는 거 안 좋아하셔서"라는게 그 이유다. 이는 백옥담의 '중전 코스프레'라 불리며 시청자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육선지는 신혼 첫날밤 EXID의 '위아래' 댄스로도 실소를 자아냈다.
'압구정백야'의 개연성 없는 전개와 뜬금 없는 장면은 사실 전작에서도 수차례 화제가 됐다. 앞뒤 스토리는 물론, 캐릭터의 성격과도 무관한 출연자들의 황당한 행동은 '코미디'에 가깝다. 극중 인물들의 입을 빌어 시청자들에 자신의 생각을 '훈계'하고 '주입'하는 일도 잦다.
그러나 '압구정백야'가 진짜 문제작인 이유는 스토리가 없기 됐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필수 요소인 서사 구조가 실종됐고, 캐릭터의 흡입력이 사라졌다.
드라마의 시작은 분명 복수극인듯 했다. 백야는 친오빠의 죽음을 두고 친모 서은하(이보희 분)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를 복수하기 위해 조나단과 결혼했다. 통속극의 뻔한 전개지만, 시청자들이 주인공의 복수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스토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청률이 지지부진했던 탓일까. 아니면 화제성이 없었던 탓일까. 임성한의 '데스노트'가 발현됐다. 백야는 결혼식 당일 황당한 이유로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됐다. 서은하의 집에 살고 있지만, 복수는 없고 자연히 이야기의 긴장감도 없다. 백야와 화엄(강은탁 분)과 애틋한 러브스토리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마저도 시청자들이 집중하기엔 방해요소가 많다.
오히려 육선중(이주현 분)과 김효경(금단비 분)의 러브라인이 더 애틋했고, '백옥담 드라마'라고 해도 될만큼 육선지의 비중이 두드러졌다. 백야와 갈등을 일으켜야 할 서은하는 오히려 남편 조장훈(한진희 분)의 바람기에 갈등을 일으킬 태세다.
중심 이야기는 없고 이야기는 겉돌고 있다. 주인공들이 없어져도 스토리 전개는 무방해 보이고,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알길이 없다. 하물며 막장으로 비난 받았던 임성한 작가의 전작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쯤되니 임성한 작가의 필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보고 또 보고'와 '인어아가씨'로 탄탄한 필력과 흡입력 있는 전개를 인정 받았던 스타작가 임성한이 맞는 걸까. '하늘이시여'도 CG와 일부 전개가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내공' 있는 스토리였다. 전작 '오로라공주'는 등장인물들이 하나하나 죽어나가는 과정 속에서도 중심 스토리와 사랑 받는 캐릭터들이 존재했다.
이쯤되면 '압구정백야'로 임성한 월드는 진화하고 있는 건지, 기존 막장을 뛰어넘는 새로운 막장에 도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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