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4년의 임기를 보장받은 울리 슈틸리케(60) 신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우루과이전을 지켜보면서 대표팀 운영의 힌트를 얻었을까.
슈틸리케 감독은 8일 입국해 취임 기자회견을 갖고 곧바로 이날 저녁 고양시에서 열린 한국-우루과이전을 관전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한국대표팀 관련 정보들을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해 '관중' 입장에서 편안하게 관전했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 후 신태용 코치와 기자회견에 동석한 슈틸리케 감독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 사실상의 감독대행이었던 신 코치를 "오늘은 신태용 코치가 감독이다"라며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경기를 지켜본 인상과 경기중 벌어진 상황에 따른 생각 정도를 표현했지만 누가 좋고 나쁜지 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앞서 가졌던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슈틸리케 감독은 이전의 감독들이 보여줬던, '마법사'를 자처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특별한 대표팀 운영 방법이나 그만의 지도 스타일을 꺼내지도 않았다. 패싱축구나 수비축구처럼 특징적으로 추구하는 스타일을 부각시키지도 않았다. 독일 유소년대표팀 감독을 맡는 등 '선굵은' 축구의 대명사 독일 출신이면서도 패스로 대표되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였던 그는 얼마든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었지만 최대한 말을 아끼며 신중함을 보여줬다.
과신도 없었다. 브라질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독일의 주요 선수를 발굴했던 그지만 "독일 축구가 정답은 아니다"라며 세계 축구의 흐름을 주도하는 전술이나 경향들이라고 해서 모두 정답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슈틸리케 감독은 이기는 축구에 기반한 전술 활용을 하겠다고 조심스럽게 흘렸다. 그는 "경기 후 점유율이 어느 정도였는지, 패스나 슈팅을 몇 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라며 세부적인 분석은 크게 의미가 없음을 강조했다. 오히려 "승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은 티키타카가 승리의 요인이 될 수 있고 어떤 날은 롱볼 축구를 할 수 있다"라며 상대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승리를 얻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는 한국축구의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 번에 변화를 주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서서히 변화시키면서 대회 성격이나 만나는 상대의 성향에 따라 맞춤형 전술로 대응하며 영리하게 승리를 얻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익명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은 "그간 한국 축구는 시원하게 이기는 보여주기식 축구에 길들여져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의 행간을 읽어보면 결과를 먼저 찾으면서 내용을 바꿔나가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보인다. 축구 지능이 높지 않으면 시도할 수 없는 것들이다"라고 슈틸리케의 의중을 분석했다.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의 좌절을 두 차례나 언급한 슈틸리케는 "알제리전 패배 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경험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어려운 결과를 어떻게 극복할지 잘 준비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승리가 필요할 때 실리적이면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영리한 축구를 한국대표팀에 심어주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축구협회 한 고위 관계자는 "슈틸리케 감독은 협상을 하면서도 거창한 구호 대신 내가 한국을 위해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자신의 감독 생활에 마지막이라며 배수의 진을 치고 달려들었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나설 수밖에 없는 것 같다"라며 충분한 기회를 준 만큼 변화된 대표팀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슈틸리케 감독은 조급한 한국 축구 문화에 '기다림'을 주문했다. 그는 "매 경기 이길 수 있다는 약속은 드릴 수 없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경기를 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싶다"라며 점진적 변화로 발전하는 대표팀을 강조했다. 또, "내가 할 일이 약을 처방하는 것인데 아직 어떻게 처방해야 할지 모른다.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달라"라고 여유를 갖고 인내해줄 것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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