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브라질월드컵에서 축구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5.9세였다. 역대 한국 월드컵대표팀 중 가장 어렸다. 30대는 곽태휘(33, 알 힐랄)가 유일했다. 박주영(29), 정성룡(29, 수원 삼성) 등 막 30대로 접어드는 이들이 있었지만 연륜과 경험이 있는 선참급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대회 전부터 문제점이 노출됐다. 경기 외적으로는 팀을 한데 묶고 경기 중에는 그라운드에서 경기 운영 조율이 가능한 경험 많은 리더의 부재가 드러난 것이다. 23인의 합동 리더십을 대표팀은 내심 기대했지만 결과는 아쉬운 탈락이었다.
월드컵 이후 자연스럽게 팀의 균형이 화두로 떠올랐다. 경험 많은 베테랑이 선수단의 조언자 역할을 하고 중고참들이 후배들을 이끄는 젼헝적인 조직 운영 방식이다. 5일 베네수엘라전에서 결국 성과가 나타났다. 하나의 팀이라는 무엇인지를 볼 수 있었다.
이날 대표팀은 이동국(35, 전북 현대)이 두 골을 넣으며 A매치 100경기 출전인 센추리클럽에 가입을 자축했다. 경기 전부터 이 기록이 화제가 된 가운데 막내 손흥민(22, 레버쿠젠)은 "동국이형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돕겠다"라고 하는 등 훈훈한 모습이 연출됐다.
골을 넣은 뒤에는 팀 분위기를 대변해주는 모습이 나왔다. 이동국이 후반 7분 머리로 골을 넣자 동료들이 뛰어와 축하해줬다. 이때 손흥민은 존경의 표시로 이동국의 축구화를 닦아주는 세리머니를 했다. 당황한 이동국이 머리로 골을 넣었다고 손짓을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13살 위인 이동국에게 손흥민은 조카뻘이지만 그라운드에서는 경계가 없었다. 세리머니 하나로도 팀 분위기가 얼마나 끈끈해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동국의 존재가 낼 수 있는 대단한 효과였다. 이동국은 손흥민, 이명주(알 아인) 등의 슈팅이 빗나가면 다가서서 다독이는 등 흐름마다 맏형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차두리(34, FC서울)는 먼저 몸을 던졌다. 그라운드에서 충돌이 잦을 때마다 다가가 말리거나 동료들의 기를 세워줬다. 이전 기성용(25, 스완지시티), 구자철(25, 마인츠05) 등이 줄곧 상대와 기싸움으로 일관하던 것과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선참이 먼저 나서서 상대와 싸우니 경기 전체를 조율하는 기성용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평소 유쾌한 성격의 차두리지만 그라운드 안에서는 물불가리지 않는 전사 역할을 먼저했다. 덕분에 후배들의 부담도 크게 줄어들 수 있었다. 경기 막판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이 니콜라스 페도르의 의도적인 충돌에 고통을 호소하며 넘어지자 강력한 항의를 하는 모습도 베테랑 다웠다.
경기에 앞선 훈련에서도 이동국과 차두리는 웃음을 쏟아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조성에 애썼다. 손흥민이 훈련 종료 후에도 계속 슈팅 연습을 하자 차두리는 "동국이형 감기 걸리겠다"라며 빨리 나오라고 농담을 던졌다. 이동국도 손흥민의 슈팅을 막는 골키퍼 김진현에게 "진현아 하나만 먹어줘"라며 우스갯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권위를 내려놓고 가볍게 자신들의 경험을 후배들과 공유하는 이동국과 차두리는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줬다. 나이가 대표팀 선발의 제약 조건이 될 수는 없음을 보여준 베네수엘라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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