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차두리(34, FC서울)는 '로봇'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압도적인 피지컬에서 나오는 파워와 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차두리는 로봇에 가장 어울리는 축구 선수이며 로봇으로 오해받고 있는 유일한 축구 선수다.
2010 남아공월드컵 당시 로봇 차두리를 차범근 전 감독이 뒤에서 조종한다(?)는 설까지 돌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정말 충전을 해야 하는지, 등에 전원 코드가 있는지, 비밀리에 공개된 로봇 차두리 설계도는 진짜인지도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 있다.
확실한 것은 차두리가 고장 나지 않고 여전히 강력한 힘을 내고 있는 로봇이라는 것이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 정교해지고 더 성장하고 있다. 로봇 스스로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27일 열린 2014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FC서울과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 이 곳에서 현재 로봇 차두리의 상태를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로봇 차두리는 여전히 강렬했고, 로봇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모두 발휘하며 서울의 4강행을 이끌었다.
로봇 차두리의 첫 번째 기능, 수비 기능이다. 차두리의 포지션은 수비수다. 수비 기능이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다. 차두리는 포항 공격진을 틀어막았고 포항은 끝내 한 점도 뽑아내지 못했다. 몸싸움과 헤딩 경합 등 수비수로서 모자람이 없었다.
수비수 차두리의 공격 기능.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차두리는 공격수 출신이다. 공격으로 치고 나갈 때 이렇게 위협적인 수비수는 없다. 차두리는 포항전에서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포항 수비진을 흔들었다. 폭발적인 질주는 로봇 차두리의 '전매특허'다. 여기에 정확한 패스 기능까지 탑재했으니 상대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봇 차두리의 패스는 정교해지고 있다. 간혹 슈팅 기능도 선보이며 골을 노리기도 했다.
수비, 공격 기능과 함께 로봇 차두리에 핵심 기능이 하나 더 있다. 일반적인 로봇은 가질 수 없는 기능이기에 더욱 가치 있는 기능이다. 바로 '감성 기능'이다.
일단 웃는 얼굴 기능을 탑재하며 감성 로봇이라는 사실을 어필하고 있다. 울보 기능도 더해 팬들도 함께 울게 만드는 기능도 있다. 그리고 승리의 기쁨보다 패배한 상대의 상처를 먼저 어루만져주는 차두리.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감성 로봇을 완전체로 만들고 있다.
포항전이 끝난 후에도 그랬다. 승부차기 끝에 서울이 3-0으로 승리했다. 치열한 승부였다. AFC 8강전이라는 큰 대회의 위용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몰리나의 승부차기가 성공돼 서울의 4강행이 확정되자 서울 선수들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기쁠 수밖에 없었다. 치열한 승부에서 승리를 거뒀고,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기 때문이다. 서울 선수들은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만큼 포항 선수들의 가슴은 쓰렸다. 패배의 상처가 컸다. 그 때 서울 선수 중 유일하게 차두리가 포항 선수들의 손을 잡았다. 차두리는 팀 동료 선수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 전에 포항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을 다독였다. 자신의 기쁨보다 상대의 아픔을 먼저 챙겼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 챔피언스리그 4강행을 바랐던 차두리였다. 그 누구보다 기쁜 차두리다. 그렇지만 자신의 기쁨을 포항 선수들을 위해 잠시 감췄던 것이다.
이런 장면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FA컵 16강전 포항전이 끝난 후에도 그랬다. 당시에도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서울이 이겨 8강에 올라섰다. 경기가 끝나자 차두리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보다 포항 선수들을 먼저 챙겼다.
로봇에 감성을 더한 차두리. 치열한 프로의 승부세계에 피어나는 이런 감성 로봇의 온기는 한국축구를 따뜻하게 덮어주고 있다. 이렇게 따뜻한 로봇을 어디서 또 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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