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은퇴 기자회견에서까지 '프로의 품격'을 잃지 않았던 '초롱이' 이영표(36)다.
이영표가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현역 축구 인생을 정리했다. 기쁨과 아쉬움 등 많은 감정이 교차한 가운데 달변가답게 할 말은 꼭 하는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이영표는 14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미 지난달 마지막 소속팀이었던 미국프로축구(MLS)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마지막 경기와 함께 은퇴식을 치렀지만 국내 팬들 앞에서는 처음 나선 것이라 그랬는지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 준비하고 계획된 대로 은퇴를 하게 된 때문인지 아쉬움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영표는 눈물 한 방울 내비치지 않으면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가감없이 꺼냈다. 역대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한 선수들 중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이는 이영표가 거의 유일했다.
물론 그는 눈물은 은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다 흘렸다고 한다. 이영표는 "은퇴를 준비한 지난 6년간 남몰래 혼자 많이 울었다"라며 굳이 슬프게 현역 마지막을 보내지는 않겠다고 전했다.
직접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소감도 적어왔다. 종이가 아닌 스마트폰에 담아은 은퇴의 변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말에 떨림이나 얼굴의 표정 변화 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소감문에는 지난 시간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앞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담아냈다. 이용표는 "축구선수로 산 27년간의 아쉬움은 없다"라며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길로 간다고 말했다.
◆ 다음은 이영표의 은퇴의 글
은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수많았던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이 스쳐 지나간다.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한다고 생각하니 감사함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언젠가는 꼭 한 번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2002년 월드컵 전까지 대한민국 축구의 중요한 문제는 수비불안이었고 그 중심에 내가 있었다. 축구팬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 때문에 패한 경기가 많았다. 비겁한 변명과 핑계로 들러댄 적도 많았다. 내 책임을 동료들이 져야 할 때도 있었다. 미안한 일이다.
한국축구를 향해 싫은 소리를 한 적도 있었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을 보면서 축구인으로서의 하나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라운드 위를 달리느라 주변을 돌아볼 수 없었다. 이제 27년간의 긴 경기를 마치고 밖에서 얼마나 수고하는 분들이 많은지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에게 늘 도움만 받았지 누구에게 도움을 주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도움이 되지 못한 나의 인생을 돌아본다.
즐거움이 우선이라는 1인칭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오른쪽 손을 왼쪽 가슴에 얹었을 때 느꼈던 뜨거움 속에서 내가 아닌 우리를 느꼈다. 이제 그 뜨거움을 다시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마음이 무겁다. 지금껏 부족한 날 채워준 많은 스승들과 선후배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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