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한국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2승1패로 대만, 네덜란드와 동률을 이뤘지만 TQB(Team Quality Balance)에서 뒤져 B조 3위에 그쳤다. 지난 대회 준우승팀 한국은 어떻게 이런 결과를 나타냈을까. 3가지 요인을 짚어봤다.
◆동기부여의 문제
이번 대회를 앞두고 나온 가장 큰 우려는 선수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킬 요소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한 한국이다. 앞선 2번의 WBC에선 각각 4강과 결승에 진출했다. 최소 준결승에 진출해야 '본전'이고. 병역혜택 등 선수들을 자극할 만한 요인도 없었다. 이미 소속팀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대회 상금에 동기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이전 국제대회와 달리 이번 대회를 위해 모인 선수단은 웬지 모르게 가라 앉은 분위기였다. 아직 몸을 만들어야 하는 3월이라는 시점을 고려하더라도 대회에 임하는 분위기가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특별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으니 적지 않은 선수들은 국내리그 시즌 준비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였고, 부상의 여파가 있었다지만 초기 대표팀 명단에서 상당수가 빠지고 말았다. 선수들에 대한 동기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는 앞으로도 각종 대회에서 한국의 가장 큰 숙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상대를 얕봤다
결과론이지만 상대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않은 점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회의 특징은 세계 야구가 급속도로 평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야구 변방' 브라질이 강호 일본을 상대로 적지에서 경기 후반까지 리드한 점, '복병'으로만 여겼던 네덜란드가 예상보다 탄탄한 전력으로 2라운드에 진출한 점은 아시아라운드의 가장 큰 특기사항이다.
한국은 세계 야구의 바뀐 흐름에 둔감했다. 평소 하듯 관성적으로 대비했다. 결국 첫 경기서 네덜란드에 일격을 당한 뒤 휘청이다 짐을 쌌다. 대회 시작 전부터 조짐은 좋지 못했다. 급격히 떨어진 타격감 탓에 연습경기에서 한 점 내기가 벅찰 정도였다. 그러나 코칭스태프는 "대회가 시작하면 달라질 것"이라며 여유만 부렸다. 정작 뚜껑이 열리자 공수주에서 네덜란드에 압도당한 끝에 완패했다.
"최악의 게임이었다"고 류중일 감독이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 마지막 대만전에서도 8회 강정호의 역전 투런홈런이 터지기까지는 답답한 경기가 이어졌다. 선수단 전체에 퍼진 근거 없는 낙관론과 여유는 결국 대표팀의 발목을 잡았다.
◆복잡한 제도에 당했다
WBC의 독특한 제도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국은 성적만 놓고 보면 2승1패로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TQB(Team Quality Balance)=(득점/공격이닝)-(실점/수비이닝)에 따라 득실에서 밀려 탈락이 결정됐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점수를 더 많이 올리는 팀이 이기는 경기다. 그러나 어떤 리그에서도 순위를 가릴 때 득실점차를 고려하지 않는다. 일부 아마추어 종목과 달리 승률과 다승 우선 원칙은 야구 만의 전통이다. 그러나 WBC는 지난 2009년 대회 뒤 대대적으로 규정에 손을 댔다. 더블 엘리미네이션으로 치러진 4년 전 대회 당시 한국이 라이벌 일본과 결승까지 무려 5번을 맞붙자 "WBC가 두 팀 만을 대회냐"는 뒷말이 나왔다.
그러자 대회 주관사인 WBCI는 좀 더 다양한 팀들간 경기를 장려한다는 이유로 4곳에서 지역 예선을 치름과 동시에 TQB를 상위 라운드 진출의 주요 요건으로 내세웠다. 일본 언론마저 "한국이 대회 규정 때문에 억울하게 탈락했다"고 할 정도로 한국은 이 복잡한 제도의 희생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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