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미리 말하는데, 정근우가 시리즈에서 큰일 한 번 할 겁니다."
이호준(SK)의 예상이 적중했다. 이호준은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맹활약할 선수로 정근우를 지목했다. 그는 정근우가 매일 밤 개인 연습을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정규시즌 부진의 아쉬움을 플레이오프서 털어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정근우는 이번 시즌 타율 2할6푼6리(467타수 124안타) 46타점 22도루를 기록했다. 2007년 이후 처음으로 타율 3할 달성에 실패했다. "최악의 부진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털어놨을 정도로 고민이 많은 시즌이었다.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는 정근우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정규시즌의 부진을 포스트시즌까지 이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정근우는 단체 훈련이 끝나면 집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밖에서 스윙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니까. 경비 아저씨께 옥상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한 모양이다. 매일 200개씩 쳤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정)근우가 많이 좋아졌다. 자기 스윙을 찾았고, 자신감도 붙었다. 나한테도 '형, 옥상 가서 스윙하세요'라고 권하더라(웃음). 근우가 이번 시리즈에서 큰일 한 번 할 것 같다." 이호준의 말을 들은 정근우는 "야구선수면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멋쩍게 웃었다.
이호준의 말대로 정근우는 롯데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MVP로 선정됐다. 4차전에서 4안타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5차전 진출을 이끌었고, 22일 최종전에서도 공격의 활로를 개척하는 톱타자 역할에 충실해 그 공을 인정받았다. 플레이오프 성적은 18타수 8안타 3도루 타율 4할4푼4리.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인 정근우 덕분에 SK는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돌아보면 절로 웃음이 나는 추억들이다. 정근우는 "옥상 훈련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아내가 '가족들 굶기지는 않을 것 같아 든든하다'고 하더라"라며 빙긋 웃었다.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은 5차전 종료 후 인터뷰에서도 감격이 묻어났다. "9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을 때 집에서 연습하던 생각이 나더라. 시즌 때 워낙 못해 가을에는 잘해보자고 다짐했었다. 꼭 한국시리즈 우승한 기분이었다. 눈물이 글썽하더라. 그동안의 부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또 한 명의 예언자가 있었다. 박재상의 활약을 예상한 김강민이다. 김강민 역시 플레이오프 전 "예언 한 번 할까요?"라고 운을 띄운 뒤 "이번에는 (박)재상이가 잘할 거다. 느낌이 왔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박재상도 시즌 타율 2할1푼6리(269타수 58안타) 23타점 6도루로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역시 2007년 이후 가장 부진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순간, 박재상이 날았다. 4차전에서 3차례 번트 실패로 자존심을 구겼지만, 5회 결승타가 된 2루타를 날리며 실수를 만회했다. 5차전에서도 3-3으로 맞선 5회 결승 3루타를 때려 팀의 6-3 승리를 앞장서 이끌었다. 박재상은 적시타를 친 후 헬멧까지 벗어던지고 3루까지 내달렸다. 손을 번쩍 든 세리머니에 그동안의 아쉬움을 모두 담아 날렸다.
선수들이 직접 동료의 활약을 예언하고, 지목받은 선수가 기대대로 중요한 순간 큰일을 해냈다. SK의 한국시리즈 진출기는 이렇게 예언 적중 릴레이로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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