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시즌 10승은 흔히 좋은 투수의 기준으로 활용되곤 한다. 승리투수가 되려면 운도 따라야 하지만 기본적인 실력 없이 한 시즌 10승을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10승은 어려운 기록이다.
그렇다면 통산 100승은 어떨까. 그 어렵다는 시즌 10승을 10년 동안 해내야 만들 수 있는 기록이다. 그래서 100승 투수는 아무나 이룰 수 없는 기록으로 꼽힌다. 올 시즌까지 31년의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23명밖에 이루지 못한 기록이기도 하다.
100승 투수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하나같이 전설적인 이름들이다. 때문에 현역 100승 투수는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것 자체가 후배 선수들에게는 공부가 된다.
살아있는 전설들이 줄줄이 옷을 벗고 있다. 올 시즌까지 현역 최다승 기록의 주인공이었던 김수경(33)은 은퇴를 선언하고 넥센의 코치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김수경은 통산 112승을 기록, 이 부문 역대 13위에 올라 있다. 올 시즌 9경기에 출전했던 김수경은 예전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이대진(38)도 더 이상 마운드 위에 선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지난해 KIA에서 LG로 팀을 옮기며 재기의 칼을 갈았지만 세월을 속일 수는 없었다. 올 시즌 1군 단 1경기에 등판한 이대진은 해태 시절 스승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에서 코치직을 맡았다. 이제 이대진은 통산 100승을 따낸 투수가 아닌 한화의 초보 코치다.
박명환(35)은 올 시즌까지 몸담았던 LG를 떠나 새로운 팀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깨 부상으로 2010년 4승을 거둔 이후 더 이상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아직 은퇴를 결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통산 102승을 거둔 투수의 앞날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아직 싱싱한 구위를 자랑하는 100승 투수도 있다. 삼성의 배영수(31)다. 배영수는 올 시즌 12승을 따내는 '회춘투'를 선보이며 통산 102승을 기록하게 됐다. 1군 무대를 밟고 있는 유일한 '현역 100승 투수'다. 올 시즌 보여준 구위만 유지한다면 배영수의 승수 사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배영수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도 여느 은퇴 선수들처럼 현역 연장의 위기를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이후 구위가 급격히 떨어진 것. 2007년을 통째로 쉰 뒤 2008년에는 9승을 거뒀지만 2009년 1승12패의 성적에 그쳤다. 2010, 2011년에는 잇따라 6승8패를 기록하며 그저그런 성적을 냈다.
하지만 배영수는 다시 살아났다. 강속구는 잃었지만 제구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유형의 투수로 거듭났다. 올 시즌 12승8패 평균자책점 3.21의 성적을 거두며 부활을 알렸다. 지난 2일 시즌 최종 등판이었던 LG전에서 12승째를 거둔 배영수는 "올 시즌 12승보다는 2009년 12패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며 실패를 거울삼는 모습을 보였다.
떠나는 전설들 속 빛나는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배영수. 그는 올 시즌 아직 보여줄 것이 남아 있다. 바로 한국시리즈 무대다. '살아있는 전설'로 거듭난 배영수는 가을잔치를 통해 시즌 유종의 미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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