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축구대표팀 최강희 감독은 전북 현대 사령탑 시절 이기고 있어도 공격수를 계속 투입해 추가골 사냥에 나서는 무한 공격 축구를 보여줬다. 이 때문에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단 한 골에 승부가 갈리고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대표팀 경기에서는 닥공을 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최 감독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후 닥공보다는 승리라는 결과 자체에 목적을 두겠다며 "승부는 한 골차로 갈린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상 닥공이 아닌 '닥승(닥치고 승리)' 축구를 구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최 감독이었지만 닥공 본능은 멈출 수 없었다. 9일 새벽(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조별리그 1차전 카타르 원정 경기가 그랬다.
최종예선 첫 경기라는 부담감, 그리고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내야 하는 부담감까지 더해 대표팀이나 최 감독은 중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최종예선부터 첫 경기에서는 패한 적 없는 전통도 지켜나가야 했다.
카타르의 더위와도 싸워야 했다. 경기장 내에 에어컨 설비가 있지만 가동하지 않아 고온에서 뛰느라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최 감독은 전북 시절 자주 사용했던 4-2-3-1 포메이션에 기반을 둔 공격적인 전술로 카타르를 압박했다. 수비가 흔들리면 공격수의 골로 해결하면 된다는 믿음도 있었다.
1-1로 팽팽하던 후반 10분, 최 감독은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을 빼고 196㎝의 장신 공격수 김신욱(울산 현대)을 투입했다. 전북 시절 190㎝ 장신 정성훈을 조커로 교체 투입해 재미를 보곤 했던 것과 유사한 전술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김신욱은 헤딩에 의한 공중볼 장악은 물론 슈팅 능력이 더욱 발전하는 상태라는 점이다.
김신욱 카드는 효과 만점이었다. 투입되자마자 곽태휘의 역전 헤딩골에 움직임으로 기여했다. 장신의 김신욱이 등장하니 카타르 수비진이 그를 따라다니다 '골 넣는 수비수' 곽태휘를 놓친 것이다.
김신욱은 20분에 기어이 골을 넣었다. 이동국의 패스를 빠른 판단으로 오른발 슈팅을 시도해 골망을 갈랐다. 조커 투입의 효과를 제대로 보여줌과 동시에 소속팀 울산 김호곤 감독이 "최근 머리가 아니라 발을 자주 사용하려는 욕심이 있는 것 같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도 확실하게 알렸다.
한국이 3-1로 리드를 잡았는데도 공격에 대한 의지는 계속됐다. 29분 이동국(전북 현대)을 빼고 돌파력이 뛰어난 남태희(레퀴야)를 넣었다. 김신욱이 원톱으로 나서고 왼쪽 날개 김보경(세레소 오사카)이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더 공격적이 됐다. 발 빠른 이근호-남태희 양날개가 날카로움을 더했다.
후반 35분엔 김두현(경찰청)을 빼고 지동원(선덜랜드)을 넣으면서 12일 레바논과 2차전에 대비해 공격 자원을 점검하는 여유도 보였다. 수비수나 미드필더 등을 교체할 수 있었지만 원톱 요원인 지동원을 뛰게 해 감각을 찾아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후 한국은 이근호가 한 골을 더 넣으며 4-1 다득점 승리라는 수확을 얻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잡은 최강희표 닥공이 대표팀에서도 빛난 경기였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