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한화는 왜 '박찬호 특별법'에 팔을 걷어붙였을까. 내년 시즌 당장 몇 승을 올려줄 것이란 기대보다는 박찬호(38)라는 '브랜드'에 더 큰 매력을 느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실력에 의한 팀성적 기여보다는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사실 박찬호의 현재 기량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붙일 수밖에 없다. 올 시즌 일본 오릭스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햄스트링 등 부상도 달고 살아 정확한 실력 파악이 어렵다. 한화에 정식 입단이 이루어질 경우 한대화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가 박찬호 영입에 목을 메는 건 6년 전 추억이 크게 작용을 했다. 지난 2005년 대전구장은 취재진과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적이 있다. 일본 요미우리에서 뛰었던 조성민이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등장했고, 그것도 한화 유니폼을 입고 뛰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성민은 요즘의 박찬호와 처지가 비슷했다. 그는 2002년 10월 일본 요미우리에서 퇴단한 뒤 국내로 돌아왔다. 프로야구 드래프트에 2차례 참가했지만 어떤 팀의 지명도 받지 못했다. 방송 해설자 등 외각에서만 도는 그를 향해 김인식 당시 한화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김 감독의 배려로 조성민은 시즌 개막 후인 5월이 돼서야 한화에 입단했다. 계약금 없이 연봉 5천만원의 단촐한 조건이었다.
큰 기대 없이 영입한 조성민은 그러나 연봉 이상으로 한화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 프로야구 경력의 미남 스타가 합류하자 팬들이 몰려들었다. 한산하던 대전구장은 북적였고, 각종 매체들의 인터뷰 요청이 이어지면서 한화 프런트는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는 한 야구계 관계자는 "한화가 박찬호에게 '올인'한 것은 결국 조성민이란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조성민보다 더욱 강력한 홍보 효과를 발휘할 게 분명하다. 한화로선 박찬호의 현 기량에 관계 없이 무조건 영입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민이 경기력에서 큰 기여를 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입단 첫 해 2승2패 평균자책점 6.52에 그쳤다. 한화에서의 3년간 등판 회수는 35경기뿐이다. 그러나 그가 등판할 때마다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승리라도 거둔 날이면 대부분의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한화 입장에선 조성민이 최고의 '홍보맨'이었던 셈이다.
조성민과 1973년생 동갑내기인 박찬호의 운명은 다음주면 결정된다. 2일 열린 단장회의에서 그의 국내 복귀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고, 각 구단 사장단이 합의를 하면 특별한 절차 없이 한국 무대에서 뛸 수 있다. 현재로선 별다른 장애물이 없는 상태여서 고향 연고팀 한화 입단이 유력하다.
한국인 최초의 빅리거이자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 여기에 연고지 공주 출신의 특급 스타라는 타이틀. 이 모든 것들이 박찬호의 한화 입단과 함께 어떤 메가톤급 효과를 나타낼지 야구계는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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