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이영욱(31, SK)은 쏟아지는 장맛비가 그리 싫지만은 않다.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아내와 딸의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욱의 부인 정윤숙(31) 씨는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아내와 딸이 있는 대구 원정길이 이영욱에게는 홈경기나 마찬가지다. 문학 한화전이 예정돼 있던 지난 15일, 오전부터 내린 비로 경기가 우천 취소되자 이영욱의 목소리가 들떴다. "얼른 기차역으로 마중 나가야겠어요."
2007년 결혼한 부인 정윤숙 씨는 이영욱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우천 취소가 뭐가 좋아? 한 경기라도 더 나가서 실력을 보여줘야지." 혹여 남편의 마음이 흐트러질까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조언하는 것도 아내의 몫이다.
그래서 이영욱은 더 절실하다. 이영욱은 팀이 7연패 중이던 지난 8일 롯데전에 깜짝 선발 등판해 6이닝을 3피안타 2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됐다. 이후 김성근 감독은 이영욱을 선발진에 포함시켰다. 2군을 오르내리던 이영욱에게 찾아온 천금같은 기회.
"부담감을 떨치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사실 2군에서 페이스가 무척 좋았거든요. 이 상태로 올라가서 내 진짜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마음먹었는데, 잘 된 거죠." 이영욱은 13일 LG전에도 선발로 나서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4회 우천으로 노게임이 선언되는 바람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조웅천 SK 2군 투수코치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코치님께서 기존 선수들과 실력차는 크지 않다고 힘을 주셨어요. 그런데 '맞으면 안되는데'하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천천히, 부담갖지 말라고 조언해주셨어요. 사실 나이도 있고,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던 건 사실이거든요. 여유를 갖고 던져야죠."
"딸이 '아니'라는 의사를 표현하는 법을 배워 요즘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몰라요." 이영욱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아내와 딸을 위해서라도 1군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다. 아내와 인천에서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공무원인 아내 연봉이 적지 않거든요. 자신있게 그만두라고 말을 못 하겠네요." 장난섞인 말투지만 씁쓸함이 배어있다.
"내 공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어요. 어떤 팀을 만나도 내 페이스대로만 갈 수 있다면 승산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올라가야죠." 이영욱의 새로운 도전에는 절박함이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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