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범기자] "허허,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그저 푹 충전하고 돌아올 생각이네."
자진 사퇴 후 미국으로 출국한 김경문 전 두산 감독이 현재 심경을 솔직히 드러냈다. 외부와 연락을 끊은 김 전 감독을 만나기 위해 취재진들은 출국일인 20일 오후부터 인천공항 게이트를 지키고 있었고, 저녁 무렵이 돼서야 힘겹게 그와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복잡하고도 후련한 심경을 털어놓은 김경문 전 감독은 그제서야 활짝 웃으면서 미국으로 떠났다.
김경문 전 감독은 지난 13일 구단 측에 공식적으로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고 사령탑에서 퇴진했다. 계약 마지막 해를 맞아 반드시 'V4'를 달성하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한 악재 속에 팀이 무너지면서 성적 부진으로 인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책임을 졌다. 그리고 김 전 감독은 일주일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연락을 끊었고, 이날 막내아들이 거주하는 미국 라스베가스로 출국했다.
사퇴 결정 후 처음 만난 김경문 감독은 말쑥한 정장차림에 은테 안경을 끼고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진을 보고 놀라워하면서도 이내 냉정함을 되찾았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사퇴 심경과 향후 계획을 차분히 언급했다.
먼저 김 전 감독은 "조심스럽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7년 반이나 사령탑으로 몸담았던 팀에서 자진 사퇴라는 형식으로 떠나게 되는 현실 속에 그 어떤 코멘트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떠나는 사람으로서 괜히 팀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그는 신중하게 말문을 열였다.
김 전 감독은 "그 동안 아무런 연락도 못했고, 그 점에서 팬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고 사퇴 후 심경을 밝히면서 운을 뗐다.
이어 김 전 감독은 "올해 우승후보로까지 인정받았던 팀이었는데, 모든 것이 다 내 책임"이라며 "프로는 말로서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겨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난 참 우승 복이 없나보다"고 사령탑으로서 성적에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물러났음을 다시 전했다.
또 김 전 감독은 팬들에게도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는 "두산팬들이 얼마나 좋았느냐, 정말 나에게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다. 우승으로 보답하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 뿐이다"라며 "그 동안 성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건넸다.
약 40여분간 취재진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김 감독은 연신 "조심스럽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만큼 현 상황에서 얘기를 꺼내기가 힘겨웠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말을 이어가던 김 전 감독은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에서의 생활과 향후 계획을 언급했다.
김 전 감독은 "미국으로 떠나는 것은 충전하기 위해서다. 가서 아들도 보고 그간 마음에 쌓인 짐을 내려놓고 싶다. 지인들과 좋은 곳에 여행도 가고 좀 쉬고 싶다"며 "언제 돌아올 지는 나도 모른다. 항상 짜여진 일정에서만 생활했는데 이제는 계획없는 시간도 보내보고 싶다"고 출국 이유를 밝혔다.
김 전 감독은 야구계 복귀 의사도 살짝 내비쳤다. 그는 "언제 프로포즈가 올 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내년일 지, 내후년일 지 돌아올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있으면 돌아와 팬들에게 다시 인사드리겠다"며 "충전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새롭게 충전해 마음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김 전 감독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많이 배어 있었다. 야구와 관련된 얘기는 하지말자고 하면서도 화제는 현 두산 선수들로 되돌아갔다. "(고)창성이가 걱정된다", "(김)강률이와 (노)경은이가 참 좋아졌더라", "역시 (이)혜천이와 (이)현승이가 잘해줘야 한다" 등 어느 새 두산과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던 김 전 감독은 스스로 "내가 또 야구얘기를 하고 있다"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는 "역시 나는 야구쟁이인가 보다. 야구밖에 배운 것이 없는데 당연한 것이겠지. 쉰다고 했지만 미국에 가도 메이저리그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취재진과 인사를 나눈 후 김경문 전 두산 감독은 손을 흔들며 출국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다시 한국 야구계로 돌아올 날을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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