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51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꿈이 승부차기와 함께 날아간 순간, '어린 왕자'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은 허탈함에 말을 잃었다. 웃는 얼굴로 조리 있게 말을 하며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해왔던 그도 뼈아픈 패배 앞에서는 크게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고통과 허무함이 엄습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구자철에게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소속팀 경기에서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펼치다 무릎 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 선배 박주영(AS모나코)이 보낸 문자였다.
구자철은 박주영과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의기투합하며 친해진 사이다. 와일드카드로 참가했던 박주영과 주장으로 대표팀을 이끌었던 구자철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위해 전진했다.
하지만, 한국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4강전에서 연장 종료 직전 결승골을 헌납하며 0-1로 패했다. 목표를 잃은 대표팀은 표류했고 이란과 3-4위전에서도 후반 초반까지 1-3으로 끌려가며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나 박주영이 만회골을 넣으며 추격의 신호탄을 쐈고 지동원이 연속 두 골을 넣으며 4-3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어렵게 동메달을 획득한 뒤 박주영과 구자철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마음의 부담을 털어냈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박주영이 부상으로 빠져나가자 조광래 감독은 고민 끝에 구자철 카드를 박주영 자리에 내세웠다. 구자철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조 감독의 전략을 돋보이게 함은 물론 자신의 기량도 뽐내며 유럽 주요 빅리그 구단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정상 도전 직전 고비마다 실패하면서 구자철의 마음은 허무함으로 메워졌다. 아시안게임에서 그랬고, 지난해 K리그에서는 소속팀 제주 유나이티드가 챔피언 목전까지 갔다 준우승에 그쳤다. 이어 이번 아시안컵에서마저 우승 실패로 그가 간절히 원하던 것들은 모두 무너졌다.
구자철은 개인 홈페이지에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4강전까지 다섯 경기에서 436분을 뛰며 경기당 평균 87.2분을 소화한 육체적 피로보다 심리적 위축이 그를 괴롭혔다.
이 때 날아온 박주영의 문자는 큰 힘이 됐다. 박주영은 '아쉬운 것은 잘 알겠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대회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해내야 한다'는 격려의 말을 보냈다.
'유종의 미'라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잠시 잊었던 구자철은 "팀 주치의 선생님이 몸 상태를 확인하고 근육 등에 피로가 있다고 감독님께 보고했다"라며 "특별히 몸 상태가 나빠서 뛰기 어렵다고 한 적은 없다. 할 수 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전에 반드시 출전한다"라고 의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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