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큼 내년, 내후년에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길 수 있도록 열심히 할 겁니다."
김명성(롯데 투수, 중앙대졸업예정)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며 2010년을 되돌아봤다. 대학 졸업반인 올 시즌 초반 춘계리그를 통해 프로 스카우트 사이에서 이미 즉시전력감이라는 평을 받았던 김명성은 5월에 열린 KBO총재기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등 최고의 우완투수로서 입지를 굳혔다.
시즌 총 74이닝을 던져 7승, 평균자책점 1.58의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2011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5번, 롯데에 1라운드 지명되는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에 아마추어 쿼터 한 자리를 꿰차는 겹경사를 맞았고 그 행운은 금메달까지 이어졌다.
프로에서 잔뼈가 굵은 최고의 스타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나선 아시안게임은 김명성에게 '병역 혜택'이라는 큰 선물까지 안겨주었다.
그 누구보다 화려하면서 동시에 실속 있는 한 시즌을 보낸 김명성은 지난 8일 '야구인의 밤' 행사에서는 대학투수 부문 우수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만큼 좋은 해는 다신 없을 거 같아요.(웃음). 지금도 꿈만 같아요."
광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옆자리에 특별상 수상자로 참석한 메이저리거 추신수(클리블랜드)와 귓속말을 주고받는 등 국가대표간의 진한 동기애(?)를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김명성은 수상 소감을 밝히며 김기덕 코치(중앙대)에 대한 감사의 인사말을 빼먹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오늘 아쉽게 참석하진 못하셨는데 김기덕 코치님께 이 상을 바치고 싶어요.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은인이시죠. 제 야구 인생을 마치는 순간, 아니 죽는 날까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코치님 정말 감사합니다."
상을 받거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경우 대부분의 선수들은 '누구 누구의 덕분‘이라는 말에 꽤 인색한 편이다. 하지만 김명성은 달랐다.
장충고 시절 3루수였던 김명성은 중앙대 진학 후 투수로 전향했다. 강한 어깨를 눈여겨보고 투수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예감한 김기덕 코치는 4년간 정성껏 김명성을 지도해 정상급 투수 한 명을 키워냈다. 결국 김명성은 자신을 새롭게 탄생시켜준 스승님에 대한 존경심과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어깨가 좋으니까 일단 볼이 빨랐죠. 1,2학년 땐 마운드에 서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 컨트롤은 부족했어요.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를 가르쳐주면 또 하나를 깨닫는 영리한 선수였죠. 제가 뭐 한 거 있나요? (김)명성이의 노력이 지금의 결실을 맺게 한 겁니다."
김기덕 코치는 드래프트가 끝난 뒤 예상치 못한 방황의 시기를 겪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김명성이) 높은 순번을 받고 가니까 당연히 기뻤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뭐랄까... 한순간 낙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함께 낚시도 다니고 대화도 참 많이 했었죠. 게임에 진 날엔 어김없이 문자로 더 열심히 하겠다며 저를 위로해주던 제자예요. 제가 알게 모르게 참 많이 의지했었나 봐요.(웃음)"
김기덕 코치는 이젠 스승이 아닌 팬의 입장이 되어 김명성을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죠. 당장엔 다른 이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제 시작이잖아요. 프로라는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란 결코 쉽지 않죠. 앞만 보고 달리기보단 즐기는 마음으로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주면 좋겠어요. 분명 유혹의 손길도 있을 것이고 또 시기하는 이도 있겠지만 잘 극복해낼 것이라고 믿어요. 아니 믿어야죠."
프로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지만 여전히 옛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는 김명성. 열심히 지도한 공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행복하게 해줬다며 제자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김기덕 코치.
이들 사제간의 특별한 정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절로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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