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이런 규모의 원정 응원을 떠날 수 있는 구단의 팬들이 있을까요?"
24일 오전 10시 30분께. 서울역에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무리가 속속 등장하자 일반 여행객들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단체 여행객치고는 대규모인데다 젊은 연인이나 친구는 물론 가족 단위까지 다양한 계층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푸른물결, KTX 특별열차 접수
이들은 모두 부산 구포행 열차에 오르는 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팬이었다. FA컵 결승전 부산 아이파크와의 원정 응원을 위해 대한축구협회가 마련한 전세 열차에 몸을 싣기 위해 모인 수원 팬들이었다.
같은 시각 광명역에도 똑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수원과 가까워 서울역보다 더 많은 인원이 광명역을 점령했다. 광명역에서 승차한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 정민석(27) 씨는 "푸른 물결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규모였다"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서울역에서 11시 5분에 출발한 열차에는 100명의 수원 팬이 몸을 실었다. 11시 20분 광명역에서 승차한 750명의 팬까지 포함하면 총 850명이 18량의 객차에서 정담을 나누며 구포까지 논스톱 여정을 시작했다.
열차에 오르지 못한 250명의 팬은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구단이 마련한 6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당초 1천 명의 수원팬이 기차에 탑승할 것이라는 계획 때문에 넋 놓고 있다 열차티켓 신청을 놓쳐 버스로 밀린 인원이었다.
기차 안은 생각보다 차분한 분위기였다. 이유는 쉬운 좌석 편성을 위해 그랑블루 내 각 소모임이나 개인 팬들을 모조리 섞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포터라는 동질감이 이들을 하나로 묶었고 축구 화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열혈 팬들이 위치한 8호 객차에서는 열띤 응원전이 벌어졌다. 약 30여 분간의 응원이었지만 K리그 최고의 서포터답게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KTX 18량을 뒤덮었다.
구포역 도착 후 떼지어 나오는 파란 무리에 부산 시민들 놀라
하행 좌석, 상행 입석을 배정받은 김재성(31) 씨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열차 신청을 놓쳤는데 운 좋게 좌석을 구했다"라며 "서포터끼리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함께 경기를 보러 간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기차를 전세 낼 수 있는 구단의 팬들이 어디 있느냐"라고 수원이기에 가능한 일임을 강조했다.
그동안 수원은 한국 축구응원의 역사를 썼다. 2006년 10월 포항 스틸러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버스 17대를 포함해 무려 1천 명의 원정 응원단이 포항을 찾았다. 2008년 9월에는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260명의 팬이 제주항공이 마련한 두 대의 전세기에 나눠타고 응원을 떠나기도 했다. 이번 전세 기차 역시 수원이 최초다.
마침내 오후 1시 40분 특별 열차가 구포역에 도착했다. 푸른 유니폼을 입은 무리가 한꺼번에 출구로 빠져오는 것을 본 부산 시민들은 "이게 무슨 일이냐"라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김해행 승객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던 택시기사 조만덕(47) 씨는 "살다 살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라고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팬들은 부산 지하철 3호선으로 이동했다. 수원 팬들은 4량 편성에 7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지하철을 무려 20분간이나 점령(?)했다. 한때 수원 팬들은 지하철 운행 주체인 부산교통공사에 증편 운행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경기장에 도착해 재빠르게 카드섹션을 준비하는 수원 팬들을 바라본 부산 팬 김성열(28) 씨는 "수원은 수원이고 우리는 우리"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축구협회가 부산의 일반 팬 확보에 조금 더 신경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수원의 대규모 원정 응원은 파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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