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야구에서는 유난히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은퇴를 선언하고 그라운드를 떠나 팬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영원히 그라운드를 누빌 것만 같았던 스타들도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 속에 화려하게 혹은 조용히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양신' 양준혁(삼성), '대성불패' 구대성(한화)과 함께 이영우(한화), 안경현(SK) 등 십 수년 동안 한국프로야구에서 꾸준한 성적과 뛰어난 기량을 뽐내던 선수들이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 유니폼을 벗고 새 출발을 결심했다. '캐넌히터' 김재현(SK)은 한국시리즈 출전이 남아있긴 해도 진작부터 올해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겠다고 공언해 은퇴 스타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양준혁(삼성 라이온즈)=18시즌 통산 타율 3할1푼6리 2천318안타 351홈런 1천389타점 1천380사사구
신이라 불린 사나이 양준혁. 충분히 현역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양준혁이지만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지난 7월 은퇴를 선언했다.
삼성 구단은 타격 부문 각종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양준혁의 명성에 걸맞은 성대한 은퇴식을 약속했고, 9월19일 대구 SK전에서 은퇴경기 및 은퇴식이 열렸다. 비록 양준혁은 마지막 선수 출전 무대에서 4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이날 은퇴식은 삼성팬 뿐만 아니라 전체 프로야구팬들에게 '한 선수의 퇴장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양준혁은 1993년 삼성에서 데뷔, 그 해 신인왕을 차지하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해태(1999년)-LG(2000년~2001년) 유니폼을 입고 뛰는 우여곡절을 거쳐 고향팀 삼성으로 돌아와 2002년 팀의 첫 한국시리즈 제패 순간을 함께 하는 등 '영원한 삼성맨'으로서 야구 인생을 보냈다.
프로야구 역대 통산 최다안타(2천318안타), 최다타점(1천389타점), 최다홈런(351홈런) 등 양준혁이 세운 타격관련 각종 누적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힘든 대기록들이다.
◆구대성(한화 이글스)=13시즌 통산 1천128.2이닝 평균자책점 2.85 67승(9완투승) 71패 214세이브 1천221탈삼진
1993년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에서 데뷔한 구대성은 1996년 다승과 구원 부문을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며 시즌 MVP를 수상했다. 이후 전성기를 구가하며 1999년 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구대성은 2000년을 끝으로 한국 무대를 떠나 일본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다.
2001년 이치로가 떠난 허전함을 메워주길 바라던 일본 오릭스 블루웨이브스에 입단한 구대성은 4년간 24승34패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2002년에는 2.52의 평균자책점으로 이 부문 퍼시픽리그 2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빈약한 팀 타선 때문에 5승에 그쳤고 다른 시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본야구를 경험한 구대성은 다시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했다. 2005년 뉴욕 메츠에 입단해 주로 원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하며 33경기서 23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3.91을 기록했다. 2006년엔 한국으로 돌아와 한화의 준우승을 도우며 선수 생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러나 무릎 부상과 세월의 무게 속에 결국 지난 8월 은퇴를 선언했다.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유일한 선수, 국제무대에선 '일본킬러'로 큰 역할을 하던 투수, 보직에 상관 없이 전천후로 등판하며 팀 승리를 지켜내던 투수가 바로 구대성이다. 그는 내년에는 호주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는 또 한 번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김재현(SK 와이번스)=16시즌 통산 타율 2할9푼4리 1천681안타 201홈런 939타점 1천62사사구
김재현은 신인이던 1994년, 유지현 서용빈과 함께 'LG 신인 트리오' 돌풍을 일으키며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이후 빠른 배트 스피드를 무기로 '캐넌히터'라는 별명을 얻으며 LG 공격의 중심이 됐다.
2005년 LG에서 SK로 팀을 옮긴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던 김재현은 2007년 부상으로 정규시즌에서는 84경기 1할9푼6리의 타율에 그쳤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 해 한국시리즈의 MVP는 김재현의 차지였다.
2008년 SK의 한국시리즈 2연패에도 공헌한 김재현은 2009년 KIA와의 한국시리즈를 앞둔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2010년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자신이 선수로서 최고의 가량을 발휘할 수 있는 한계 시기가 앞으로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스스로의 판단에서였다.
김재현은 올 시즌에도 2할8푼6리의 타율에 10홈런 48타점을 기록해 은퇴하기에는 아까운 기량을 펼쳐 보였다. 그러나 김재현은 자신과, 팬들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것으로 보인다. 이번 2010 한국시리즈는 김재현이라는 스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다.
◆이영우(한화 이글스)=12시즌 통산 타율 2할9푼3리 1천275안타 135홈런 533타점 606사사구
언제나 웃는 얼굴, 타석에 들어서면 방망이로 신발을 툭툭 치는 독특한 버릇. 이영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이영우는 12시즌 통산 타율이 3할에 육박하는 정교함에 장타력까지 갖춘 '한화의 1번타자'로 더 유명하다.
한화에서 1996년 데뷔한 이영우는 1999년 3할3푼4리의 타율에 13홈런 49타점을 기록하며 한화가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차지하는데 힘을 보탰다. 이후 꾸준히 3할 전후의 타율을 기록하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에도 선발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영우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2004년, 병풍에 휘말리면서부터다. 늦은 나이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이영우는 2007년에야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었다. 2008년과 2009년 나름대로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부활하는가 싶었지만 고질적인 어깨부상을 이겨내지 못했다.
올 시즌에도 개막전에 선발 출장하며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지난 9월18일 대전구장에서 은퇴식을 갖고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안경현(SK 와이번스)=19시즌 통산 타율 2할7푼4리 1천483안타 121홈런 722타점 659사사구
안경현은 화려함보다는 꾸준함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선수다. 안경현이 현역으로 활동한 19시즌은 '회장님' 송진우의 현역생활 21시즌보다 두 시즌 적을 뿐이고, '양신' 양준혁이 뛴 18시즌보다 오히려 한 시즌 더 뛰었다. 19시즌 동안 현역 생활을 이어왔다는 것만 봐도 안경현이 얼마나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선수인지 알 수 있다.
1992년 두산의 전신인 OB에서 데뷔, 2008년까지 17년 동안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활약했다. 3할 타율을 넘겨본 적이 2003년(3할3푼3리) 딱 한 번 있었을 만큼 화려한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안정적인 내야 수비와 찬스에서의 결정력이 돋보이는 선수였다. 주로 하위 타선에 포진하면서도 통산 722타점이나 기록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현역 생활에 대한 집념으로 2009년 정든 팀 두산을 떠나 SK에 새 둥지를 튼 안경현은 2009년 2할7리, 2010년 1할5푼4리의 성적에 머무르며 스스로 한계를 체감, 은퇴를 결정했다.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호랑이처럼 프로야구 선수는 은퇴 후 기록을 남긴다.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치고 달리고 던지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땀으로 쌓아올린 그들의 기록은 열정과 함께 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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