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형은 정말 자기 관리가 철저해요. 뒤통수라도 치고 싶은데 별다른 방법이 없네요."
수원 삼성의 창단 후 이운재(37)는 줄곧 주전으로 골문을 지켰다. 그의 방어는 수원 엠블럼 위에 붙어 있는 '네 개의 별(우승을 상징)'을 만들어냈다.
그의 뒤에서 교체 혹은 대체 요원으로 활약하는 김대환(33)이나 박호진(33)은 좋은 기량을 갖춰 타 팀에서 이적 제의가 쏟아졌지만 이운재와 한 배를 타고 그림자 역할을 충실히 하며 우승의 영광을 함께했다.
뒤통수를 치고 싶다는 김대환의 농담에는 부러움과 함께 늘 후보로 몸만 풀었던 신세에 대한 깊은 애환이 담겨 있다.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A매치 131경기에 나서 113실점 경력의 이운재는 한국 대표팀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했다. 그를 넘기 위해 김병지(경남FC), 김용대(FC서울), 김영광(울산 현대), 정성룡(성남 일화) 등이 도전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1994년 3월 미국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국가대표 데뷔한 그는 그 해 미국 월드컵에 발탁되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1996년 운이 없게도 폐결핵을 앓으면서 물만 마셔도 체중이 불어나는 체질이 됐다.
그렇지만, 2002 한일월드컵에서 이운재의 손을 통해 4강 신화가 만들어지면 그는 한국축구의 중심이 됐다.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호아킨의 슛을 선방하고 두 손을 모아 흔든 동작은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다.
이후 그는 거의 모든 경기에 수문장으로 나서며 상승세의 한국 축구와 함께했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원정 첫 승을 만들어냈다.
축구 인생에 위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07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안컵 도중 김상식, 이동국(이상 전북 현대), 우성용(현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 등과 음주 파문을 일으켜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하고 징계를 받아야 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예선을 통해 음주파문을 속죄하며 본선행을 이끈 그는 남아공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것으로 보였지만 목 결림 등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후배 정성룡(성남 일화)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
그렇지만, 이운재는 훌륭한 조언자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 패배 뒤 빗속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정성룡에게 다가가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이운재는 3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수원 관계자는 "월드컵 후 이운재가 소속팀의 사정과 자신의 위치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부담을 더는 방법이 대표팀 은퇴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윤성효 감독이 플레잉코치를 제안한 것도 결심을 하는데 작용한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운재의 대표 은퇴식은 오는 11일 나이지리아와의 친선경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4일 대한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 이운재가 전반전을 뛴 뒤 하프타임 때 은퇴식을 치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운재는 한국 축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 정도 예우는 당연하다고 본다. 마침 경기가 열리는 곳이 소속팀의 홈구장인 수원이다. 역사적인 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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