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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 in(人) 남아공]⑭ 총 맞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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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17일, 14일차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나빴다. '악몽'을 꿨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외로이 남겨진 꿈이었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B조 예선 2차전이 있는 날이다. 기분 나쁜 꿈을 꾸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방을 나섰다. 호텔 로비에 마침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이 몰려있었다. 그들은 한국 기자단을 보자 갑자기 호루라기를 불며 아르헨티나 응원가를 불러댔다. 평소에는 웃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날은 눈에 거슬렸다.

경기가 열리는 사커 시티 스타디움에 일찍 도착했다. 추운 날씨에도 경기장은 뜨거웠다. 한국 응원단과 아르헨티나 응원단이 서로 응원가나 국가를 외치며 경기장을 채웠다. 물론 남아공의 노란 물결도 함께했다.

역시나 아르헨티나 응원단이 숫자면에서 한국을 압도했다. 하지만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지난 그리스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응원단의 붉은 함성이 그리스의 푸른 목소리를 잠재웠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응원단이 대형 태극기를 올리는 예행연습을 지켜보며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렸다. 희망의 눈빛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이변을 기대하며 태극전사들을 주시했다.

전반 17분 박주영의 자책골이 나왔다. 전반 32분 이과인의 헤딩골이 터졌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아직 전반도 끝나지 않았다. 후반도 남아있고 한국의 투혼을 기대했다. 역시나 전반 44분 이청용이 가로채기에 이은 회심의 오른발 슈팅으로 추격에 성공했다. 희망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후반, 한국의 흐름으로 경기가 진행됐다.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의 눈빛은 서서히 절망으로 바뀌어갔다. 후반 31분 이과인에 추가골을 허용했고 35분 이과인에 또 골을 허용했다. 경기장에 붉은 함성은 들리지 않았다. 오직 아르헨티나의 하늘색 외침만이 뒤덮었다. 결국 한국은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한 채 1-4 대패를 안아야만 했다.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려왔다. 1-4로 패한 허정무호의 전술, 태극전사들의 무기력함 때문이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한국은 열세였고,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상대는 세계 최강의 팀이었다. 그들을 상대로 열정을 쏟으며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1-4 패배라는 결과물 때문에 태극전사들이 고개를 숙여서 가슴이 아팠다. 또 국내 팬들이 오직 결과물만 보고 태극전사들의 땀방울을 보지 못할까봐 가슴이 아렸다. 태극전사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의 붉은 함성이 단 한 경기로 인해 사그라질까봐 가슴이 먹먹했다.

경기가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던 기자는 아린 가슴을 진정시키고 믹스트존으로 내려갔다. 역시 선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대패를 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국민들에게 기쁨을 전해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대패를 당한 것이 자신의 탓인듯 모두 고개를 숙였다. 가슴은 더욱 아려왔다.

아르헨티나전에서 잠시 절망을 느끼기는 했지만 아직 희망을 놓을 때는 아니다. 16강 진출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에 승리한다면 16강은 충분히 가능하다.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포기도 원망도 다 때가 있다. 당초 그려왔던 밑그림대로 운명을 가를 나이지리아전이 남았다. 그 때까지는 태극전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말자. 대패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것이 지난 4년 동안 흘린 태극전사들의 땀방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⑮편에 계속...>

조이뉴스24 /요하네스버그(남아공)=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박영태기자 ds3fan@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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