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세상을 떠난 톱스타 여배우와 한 남자의 러브 스토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21세기 고단한 삶에 지친 우리를 울렸다.
바로 지난 1일 위암으로 서른 일곱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영화배우 장진영(37)의 마지막 순간은 그야말로 모든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장진영은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 연인인 김모(43)씨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결혼'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끝이 아닌 시작을 약속했던 셈이다. 왜 그랬을까... 속세의 범인(凡人)로서는 헤아리기 힘든 대목이었다.
그러나 하늘나라로 떠난 그가 남긴 메시지는 우리를 다시 일깨웠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을 앞둔 결혼, 자칫 기억 속에 사라질 뻔 했던 그가 우리 곁에 영원히 남는 결단이었다. 두 사람간의 얼마나 많은 번뇌와 눈물이 있었을까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배우 장진영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고인에 대한 이야기로 대한민국은 여전히 떠들썩하다.
김 씨는 결혼과 혼인신고와 관련한 기사의 파장이 커지자 장진영의 소속사 측을 통해 간략한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세상은 두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고 김 씨 역시 호사가들의 이런 저런 얘기로 힘들어하고 있다.
지난 2일 저녁 김 씨와 20여년 넘게 친분을 쌓아온 오랜 지인들이 김 씨를 대신해 기자에게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김 씨 역시 함께 자리했다. 그는 지인들과 떠난 연인 장진영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면 한동안 깊은 사색에 잠겼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담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신부 장진영, 결혼 드레스 입고 하늘나라로
"결혼식에서 진영이는 너무 아름다웠어요."
건강한 미소가 돋보였던 장진영은 결혼 사진에서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 씨의 측근들이 보여준 미국에서의 결혼식 사진 속 장진영은 평소보다 말라보였지만 이 세상 어느 신부보다도 아름다웠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민소매 원피스에 빨간 장미꽃 부케를 들고 있는 신부 장진영의 미소에서 암환자라는 병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남편 김 씨와 수줍게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 외국인 신부 앞에서 혼인서약을 하는 모습에서는 행복한 신부의 설레는 미소만이 남아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너무 아름답다"는 기자의 말에 측근은 "당시에는 5kg 정도 빠졌을 때"라고 답해 고통스러웠을 그의 투병생활을 짐작케 했다. 측근은 "이때 입었던 결혼식 드레스를 오늘(2일) 입관 때 수의를 입힌 진영이와 함께 올려줬다. 그 위에는 두 사람의 결혼식 사진도 올려놨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영원히 함께한 순간인 셈이었다. 결혼 드레스와 사진 때문에 당시 입관식은 눈물바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 부부가 된 이유...
"꼭 부부의 연을 맺고 싶어 했어요."
측근들은 대중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바로 장진영이 곧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혼인신고까지 했던 이유다. 이를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갖가지 논쟁까지 붙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혼식만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파장이 커지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던 이들은 "(김 씨는) 진영이를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홀로 세상을 뜨는 것보다 혼인을 통해 적을 두도록 해주고 싶어 했고 (죽음을 앞둔) 진영이에게 (김 씨 역시)자신이 해줄 것이 그것뿐이라는 생각 이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김 씨가)'44년을 살면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여자는 처음'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진영이를 사랑해 꼭 부부의 연을 맺고 싶어 했다"며 "미국에서 결혼식은 했지만 한국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을 증명하거나 남길 방법이 없어 혼인신고까지 마음을 먹게 된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했던 측근들 역시 혼인신고를 하겠다는 김 씨의 말에 처음엔 만류를 하기도 했다고. 김 씨도 생애 첫 결혼이 시작과 동시에 끝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장진영이 떠난 후의 일이 걱정도 됐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은 그만큼 장진영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씩씩했던 그녀'...내사랑 내곁에
"함께 등산 다니며 회복될 거라 믿었는데…"
장진영을 향한 김 씨의 한결같은 사랑에 만류하던 측근들은 결국 두 사람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이들은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다. (장진영이) 몸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집에서 치료를 했지만 회복이 되면 같이 북한산 등반도 하고 속초나 해남 등에 놀러가기도 했다"며 "지방에 가면 사람들이 대체로 알아보지 못해 진영이가 '여기는 극장이 없나봐'라고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고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또 이들은 "등산할 때는 평범한 40대 남자들보다 더 씩씩하게 산을 잘 올랐다. 재활에 대한 의지도 강해 주변에서도 회복에 대한 강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면서 "정말 좋은 사람이고 좋은 여자였는데 이렇게 빨리 가게 될 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지막으로 김 씨의 측근들은 "사실이 아닌 언론 보도가 너무나도 많다. 차를 팔아 (장진영의)병원비를 댔다는 것도 와전된 이야기이고 한국에 계신 (김 씨) 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미국에 갔다는 것도 잘못된 내용"이라며 "무엇보다 김 씨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인데 사적인 정보가 너무 많이 노출돼 가족들이 힘들어질까 염려하고 괴로워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지난해 1월 처음 만나 연인이 된 장진영과 연인 김 씨는 그해 9월 장진영의 위암 선고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마주쳤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의연했고 끝내 아름다운 사랑을 지켜내 많은 이들을 울렸다.
한때 장진영은 김 씨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러나, 그녀의 곁을 지키며 투병생활에 힘이 돼온 김 씨는 장진영의 생일이던 지난 6월 14일 장진영에게 청혼, 7월 2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귀국 후 8월 28일에는 서울 성북구청에 혼인신고를 해 정식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비록 죽음은 그들을 갈라놨지만 그들은 '결혼'으로 영원한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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