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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년 만에 부활한 '천추태후', 분열의 시대 화합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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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2009년 기대작 대하사극 '천추태후'가 내년 1월 3일 안방극장을 찾는다.

드라마 '천추태후'는 한때 헌애왕후였다가 태후(964년~1029년, 채시라 분)가 된 한 여인의 일대기를 그렸다.

태조 왕건의 손녀이자, 경종의 왕후, 성종의 누이동생 그리고 목종의 모후였던 천추태후는 대(大)고려라는 이상을 품고 안으로는 정치가로서 밖으로는 강감찬 장군과 함게 거란의 대전에서 세 차례나 승리한 여걸이다.

하지만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던가 유교의 나라 조선을 거치면서 천추태후는 시대의 영웅이 아닌 요부로 전락했다. 천추태후가 정치가로서, 또 전장의 영웅으로서 가장 빛을 발했던 1009년 이후 1천년만에 그녀의 삶이 재조명된다.

천추태후는 10세기초 동아시아의 패자로 등장한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고, 송을 압박해 영토를 확장하면서 불패의 기마군단을 동원해 모두 세차례에 걸쳐 56만의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지만 이에 맞서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천추태후는 1차 전쟁때 황주 천추궁의 가병을 이끌고 거란과 맞섰고, 2차 전쟁때는 연인과 아들을 모두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개경까지 침입한 거란군을 민병을 일으켜 격퇴했다. 또 3차 전쟁때는 강감찬의 설득으로 거란군을 물리치는 반전(反轉)의 역할을 했다.

이같은 시대의 여걸이었던 천추태후는 비교적 유교 사상에서 자유로웠던 고려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고려 후대 성종이 즉위하면서 유교가 국가이념으로 채택되고 조선을 거치면서 시대의 요부로 전락했다.

장성한 아들을 제치고 섭정하며 폭정을 일삼고, 정부(情夫)에게서 낳은 아들을 등극시키기 위해 조카인 현종을 암살하려 든 요부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됐다.

하지만 이같은 고려사는 유교의 나라 조선의 사대부가 편찬한 책으로 명나라에 사대하며 여필종부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시대에 기록, 천추태후에 대한 정확한 실상이 왜곡됐다.

천추태후는 현종시기 문화 고려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로 밖으로는 전장의 영웅, 안으로는 백성들의 삶을 위해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 타협했던 시대의 정치가였다.

'천추태후' 제작진은 2002년부터 촉발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민족의 자긍심을 높인 인물을 찾다가 천추태후라는 인물에 주목, 대제국 거란과 맞서면서 안으로는 백성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내치(內治)로 고려의 전성기를 이끈 한 여인을 재조명 했다.

제작진은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여와 야, 자본가와 노동자의 극한 대립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 드라마 '천추태후'를 통해 격렬한 시대의 대립과 화합을 보여 줌으로써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의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자 했다.

또 지금껏 사극에서 피동적으로 존재했던 여성상에서 탈피, 진취적인 여성상을 구현해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천추태후'를 기획했다.

'천추태후' 신창석 감독은 "천추태후가 이름에서 나타난 것처럼 1천번의 가을이 지난 뒤 2009년 재조명 된다. 유교사상의 의해 낙인 찍현던 시대의 영웅을 드라마 최고의 덕목인 재미와 감동으로 시청자들께 선사할 것"이라고 이번 드라마 기획의 의미를 전했다.

조이뉴스24 이승호기자 jayoo200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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