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개봉해 어느 덧 1천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괴물'(제작 청어람)이 갖가지 기록을 수립하면서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개봉 첫 날 최다관객 입장, 최다 스크린 확보, 최단 기간 1백만 돌파, 최단 기간 8백만 돌파 등으로 향후 한국영화의 흥행기록은 '괴물'을 중심으로 다시 써야할 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변 사람들 가운데 '괴물'을 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최근 직장에 다니고 있는 지인들과 만나 가볍게 맥주를 기울이다 '괴물'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인들은 제각기 ‘괴물’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고 저마다 할 말이 넘쳐보였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친구가 '괴물'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친구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그 친구의 주장은 " '괴물'에는 다른 영화들처럼 기억에 남는 명대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지인들은 일견 고개를 끄덕였다.

1천만 관객영화가 나오기 이전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친구'에서는 "내가 니 시다바리가",와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는 두 대사가 당시 유행어로 회자되며 명대사 반열에 올랐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에서는 북파공작을 취소한 안성기 앞에서 "비겁한 변명입니다"라고 외치는 설경구의 절규가 영화의 명대사로 꼽혔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원빈이 형으로 출연한 장동건에게 "내 핑계 대지 마. 내가 언제 그렇게 하랬어!"라는 분노에 사무친 말이 명대사로 남아 개그프로그램의 소재가 됐다.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은 강혜정이 귀여운 강원도 사투리로 "자들하고 친구나?"는 대사로 인기를 모았다. '왕의 남자'에서는 "징한 놈의 이 세상, 한 판 신나게 놀다가면 그 뿐"이라는 장생의 대사가 심금을 울렸다.
이 밖에도 '말아톤'에서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이영애가 차가운 눈빛으로 읖조리던 '친절한 금자씨'의 "너나 잘 하세요" 등등 지인들의 입에서는 과거 한국영화의 명대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런데 막상 '괴물'에서는 별다르게 기억나는 대사를 떠올리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를 묵묵히 구석에서 듣고 있던 친구 A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친구는 지인들 가운데 연봉이 가장 높은 샐러리맨이자 결혼도 빨리 한 친구였다. " '괴물'에 명대사가 왜 없냐? 나는 그 대사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더라" 지인들은 의아한 시선으로 그 친구를 바라봤다.
"박해일이 자기 선배 사무실 찾아가는 장면 있잖냐. 데모만 하던 선배가 언제 이런 직장을 구했냐는 눈빛으로 '형 연봉이 6천만원은 되죠?' 라고 물었을 때. 선배가 한마디 하지 '카드 빚이 6천이다'라고. 그 대사 들을 때 어찌나 찡하던지."
그 말을 들은 지인들은 순간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리고 친구 A의 말에 이구동성으로 공감을 표했다. 다들 그 대사를 들었을 때 극장에서 큭큭 거리며 웃었다는 고백과 함께 카드 빚이 얼마인지 서로의 푸념으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어느 덧 '괴물'의 명대사는 "카드 빚이 6천이다"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 대사만큼 근래 한국영화에서 '사회'라는 '괴물' 앞에서 마냥 초라한 샐러리맨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대사는 없었다는 것이 모인 사람들의 중론이었다.
그날 저녁, 친구 A의 카드 빚에는 결국 우리와 함께 마신 술값이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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